[인터넷 대한뉴스] 글 김윤옥 기자 | 사진 엄명하 기자
삶의 길을 묻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가르침이라며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성직자의 말이 담긴 도서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내용을 보면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과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 지혜롭게 어울려 사는데 필요한 내용 등을 전한다. 하지만 이를 보는 우리가 과연 ‘돈’이라는 물질 앞에서 얼마만큼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돈 잃고 친구도 잃는다’는 속담이 있다. (주)M레코드사 송나미 전 사장과 발행인의 얽힌 일화를 보면 돈은 잃었지만 마음은 잃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스승이 없다고 말하는데 부모가 자기 자식의 정신적 스승이 돼 달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만남
발행인은 20여 년 전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자 작사가인 조동산 씨의 둘째 아들 주례를 섰다. 결혼식에는 송대관, 설운도, 김부자 등 유명 가수와 작사·작곡가 등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조동산 씨는 송대관의 ‘차표 한 장’, 남진의 ‘내 영혼의 히로인’, 한혜진의 ‘너는 내 남자’, 문희옥의 ‘성은 김이요’, 이태호의 ‘미스 고’, 박진석의 ‘천 년을 빌려준다면’ 등 인생의 애환을 농축시킨 트로트를 만들어 낸 대중가요의 산증인이다. 그의 아들 결혼식 주례를 마친 후 뒤풀이 자리에서 발행인은 (주)M레코드사 사장이었던 송나미 씨(이하 송 사장)를 소개받고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발행인, M레코드사서 음반 취입 어릴 적 꿈 ‘가수’ 데뷔
작사가가 노래 가사로 눈물, 사랑, 이별, 고향, 그리움 등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5줄에서 10줄 내외로 표현하면 작곡가는 그 가사에 맞는 혼이 들어간 곡을 만들고 가수는 3~4분의 노래로 곡의 의미를 잘 소화해 대중에게 전달한다. 이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 대중의 눈과 귀를 움직이면 단번에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어디서 음반취입을 하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당시 M레코드사는 ‘천 년을 빌려준다면’의 박진석, ‘무효’의 신웅, 메들리여왕 김난영,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임주리 등 많은 가수들이 소속돼 있었으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음반을 만들던 곳이었다. 송 사장은 가수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고 가수지망생은 그녀를 만나려고 줄을 잇던 시절이었다. 송 사장은 회상하며 말한다. “발행인 목소리는 제가 그 동안 들어 온 1,000여 명의 어느 가수보다 절절했습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혼이 담긴 목소리에 그 분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기도 하죠.” 발행인은 다섯 살 때 헤어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꼭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키웠으나 여러 가지 사회 여건상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M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조동산 작사, 김원모 작곡, 이용복 편곡의 노래 ‘키스같은 여자’로 첫 음반을 냈다. 그 후 언론인 가수 1호로 정식으로 방송에도 데뷔하였다. 발행인은 가수의 꿈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소속된 레코드사의 사장을 신뢰하고 잘되면 인기가수로 뜰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었고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세계를 정말 몰랐다.
큰손 송 사장, 2천만 원 어음 할인 부탁
레코드 제작자 송 사장은 가수에게 당시 1억 원이 넘는 큰돈을 선불로 주고 음반을 레코딩하였다. 워낙 사람 좋고 사업이 잘 되던 때라 무리하면서까지 가수에게 투자하는 것을 보고 발행인은 왜 그러느냐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조언을 했지만 송 사장은 자기 사업스타일을 고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송 사장은 어음 2,000만 원을 들고 와 담보로 맡긴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발행인은 어음을 받고 현금 2,000만 원을 빌려줬다. 그런데 막상 지급일에 송 사장의 부도로 그 돈을 받지 못했다.
두 사람의 생명이 달렸다며 또 2천만 원 어음 할인 부탁
부도가 난 상황에서 송 사장은 2,000만 원짜리 어음을 또 가져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발행인이 물었다. “본인 같으면 빌려줄 수 있겠소?” 송 사장은 “못해주죠”라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어떻게 또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묻자 “두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꼭 2,000만 원이 필요합니다. 제가 한 동네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돈을 빌렸는데 만약 그 돈을 갚지 못하면 그분들은 죽습니다”라고 통사정을 했다.
발행인은 직접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 사정을 확인했다. 막일도 하고 폐지도 주어가며 먹지 않고 쓰지 않고 번 돈, 한 달 벌이가 30만 원, 많이 벌면 50만 원이 되었다. 그렇게 평생 모은 돈을 다 날리게 된것이었다. 각각 1,000만 원씩, 두 사람 합하여 2,000만 원도 사실이었다. 발행인은 또 어음을 받고 돈을 빌려줬다. 송 사장은 그 길로 사라졌고 발행인에게는 다시 휴지조각인 어음만 남게 되었다. 후에 확인해보니 송 사장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돈은 갚았다. 송 사장에게 들어간 4,000만 원 가운데 2,000만 원은 남의 돈이었다.
10년 잠적 후 나타나 딸 결혼 청첩장에 아들 주례 부탁
사라진지 10년 후 송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딸이 시집을 간다고 했다. 발행인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즐거운 잔칫날 찾아가서 떠들면 뭐하나 싶어 가수 박진석에게 축의금만 전해달라고 보냈다. 그로부터 송 사장이 수 일 내로 찾아오겠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들었다. 또 어느 날 찾아온 송 사장은 “그동안 한 번도 잊은 일이 없어요.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은 많으나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꼭 아들의 주례를 서주세요”라며 이번에는 아들의 주례를 간곡히 부탁했다. 발행인은 주례를 서달라고 말하러 온 사람에게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말 안 해도 더 잘 알거란 심정 때문이었다. 신랑, 신부를 보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대한뉴스 2012년 8월호 인연 편에 10번째로 소개된 주인공 문장우, 이윤진 부부다.
? 송 사장 3번 부도 후 일어난 일들
송 사장은 돈 4,000만 원만이 아니라 발행인께 신세진 것이 또 있다며 어찌 사람으로서 그 고마움을 잊겠느냐며 말했다.
“세 번 부도가 나자 가진 것도 없고 주변에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 아들 결혼식 후 염치 불구하고 재판 걸린 일이 있어 발행인을 또 찾아갔습니다. 이런저런 법적인 문제 해결하려고 부탁하면 밥이라도 사야지 어디 맨입으로 됩니까. 돈 300만 원을 들고 가 재판에서 억울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 후 형편이 어려워 발행인께 100만 원, 200만 원 빌려다 쓴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빌려 쓴 그 돈이나마 갚으려니까 그때서야 그러시는 겁니다. 빌려준 돈은 제가 인사했던 300만 원을 보관했다가 돌려주는 것이라며 재판 때문에 사람은 만났지만 큰 비용 들지 않았으니 갚을 필요 없다는 겁니다. 발행인은 그런 분이예요.
애써주신 덕분에 재판에서 억울함을 당하지 않고 해결이 잘 됐어요. 재판을 앞두고 변호사 비용이 1,000만 원 든다는데 제가 무슨 돈이 있어 대겠어요. 고민하다 할 수 없어 발행인을 찾아가 300만 원 드렸던 것인데 다 돌려주셨죠. 그리고 또 아들 결혼식 때는 양가 간의 합의대로 제 옷을 해 입어야 했는데 당시 많이 힘들었어요. 발행인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아들 결혼식인데 갖출 것은 잘 갖춰야지 하시며 한복 값을 주셨어요. 전에 빌려간 돈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없이 어려울 때면 도와주고 끝까지 뒤를 봐주시니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인생의 멘토 죽을 때까지 같이 하고 싶은 분
송 사장은 한때 대한뉴스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갚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언론이란 것이 전문성을 요하는 곳이라 크게 할 일이 없어서 지금은 떠나있다. “온갖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감사함과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서 갚지 못한 미안함을 신앙으로 이겨내며 하루하루 지탱해나가고 있습니다. 발행인의 말을 듣지 않아 3번이나 부도가 나고 실패했지만 후회한들 소용없어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마음으로나마 대한뉴스 잘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발행인은 제 인생의 멘토며 죽을 때까지 같이 하고 싶은 분입니다.”
발행인이 본 송 사장
세상에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미 2,000만 원을 손해보고 못 받을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또 2,000만 원을 해준 것에 대해 물었다.
“처음엔 참 어이가 없었죠. 헌데 제 가수의 꿈을 이뤄준 분이기도 하고 당시 억대면 참 큰돈이었는데 송 사장은 소속가수나 누가 어렵다고 하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빌려주던 분이예요. 부도가 나서 숨어 다니는 사람이 또 나타나서 2,000만 원을 빌려달라니… 뭔가 그 속에는 말 못할 사정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곳을 알려달라고 했죠. 만나서 보니 때 묻지 않고 백 원을 천 원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분들이었습니다.
송 사장 이름을 대자 참 좋은 사람이라며 노래테이프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이자도 주는 딸 같은 사람이라며 미소 짓더군요. 그 모습이 가슴에 선해 잠시 고뇌했습니다. 있는 사람들에게는 1,000만 원이 큰돈이 아닐 수 있어도 그분들에게는 힘들고 추워도 재산 1,000만 원만 생각하면 춥지 않고 안 먹어도 배부른 엄청난 돈인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먼저 생각했고 또한 송 사장도 돈을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그분들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는 그 마음이 참 인간답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주간지, 월간지에 송 사장이 기사화된 것을 봤어요. 버려진 폐품을 활용해 화초를 키웠는데 얼마나 잘 키웠는지, 버려진 것도 귀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사업은 몇 번 실패했지만 송 사장의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는 이 세상에서 어떤 참된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더 훌륭한 효자들입니다. 자식들을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살아가는데 하루빨리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후기
발행인이 음반을 내고는 라디오 대담프로도 출연하고 라디오에서 자신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 얼마나 기뻤는지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고는 “내 노래가 나오고 있으니 들어봐요” 한 적이 있단다. 물론 상대에게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지만. 당시 말만 들어도 충분히 그 장면이 눈에 훤히 그려진다. 발행인은 가수의 꿈을 이루게 해준 송 사장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돈보다 중요한 사람들의 마음과 처지를 헤아렸다. 사실 그 당시 회사 재정을 봐서는 남을 도울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인연을 귀하게 여긴 발행인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생각했다. 현대 사회는 ‘돈으로 안 되는 것 없이 다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도 친구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한다. 이번 일화를 소개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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