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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영화/스타

아리랑TV - Arirang Prime, 남과 북을 잇는 춤

   
 

우리나라 최초로 서구식 현대적 기법의 춤을 공연한 전설의 무희 최승희. 20세기는 그녀를 “아시아의 이사도라 던컨”, “한국 전통 무용에 현대무용을 최초로 접목한 인물”,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 진출해서 일제강점기 동안 한민족 자부심 고취 ”라고 평가한다.

최승희. 1911년 서울 출생. 숙명여고보 졸업반이었던 15살 때 일본 현대 무용가 이시의 바쿠의 내한 공연을 보고 무용계에 입문했다. 스승을 따라 일본으로 가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최승희는 무용 입문 3개월만에 무대에 설만큼 재능이 뛰어났고 곧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 톱스타로 성장했다.

이후 1929년에 귀국한 최승희는 서울에서 후학 양성을 시작함과 동시에 유럽과 남미까지 진출해서 월드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친일파로 몰린 최승희는 결국 사회주의자였던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을 선택, 북한 현대무용의 기틀을 세운다. 동시에 중국 활동을 통해서 경극의 무용화 작업에 앞장섰으며 중국에 현대무용을 알리는 일에도 큰 공헌을 했다.  당시 최승희의 예술적 역량은 프랑스 문호 장 콕도와 피카소 등 당대 최고 문화예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뛰어났으나 최승희는 1969년 북한의 숙청으로 삶을 마감한다.

 

정신과 뜻을 받들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남한에 변변한 자료조차 없는 현실에서도 여고생 석예빈은 12년째 최승희 춤만을 고집, 두 번째 공연을 마련했다. 물론, 최승희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원형 그대로 가르쳐 줄 스승은 남한에 없다. 6살 때 연변 무용가에게 잠깐 배운 최승희 춤이 전부였다. 2003년 요덕수용소를 탈출해 남한으로 온 탈북 무용가 김영순(79, 최승희의 제자)을 만나 최승희 춤의 기본을 다시 배웠지만, 그것만으로 전설의 무희 최승희 춤 세계를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최승희는 단지 춤만 췄던 무용가가 아니라 멀티 아티스트로 시대를 앞서 달렸던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와 탈북 무용가 김영순의 기억을 되살려 두번째 공연을 준비해가는 리틀 최승희 출신 석예빈. 과연 석예빈은 12년 만에 마련한 공연에서 빛나는 전설로 남아있는 최승희 춤을 온전히 펼쳐낼 수 있을지.

7월 15일 수요일 <아리랑 프라임>에서 펼쳐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