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 조애경 기자 | 사진 이주호 기자
임플란트 전문가를 교육하는 임플란트 전문가
약 기원전 6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여인의 아래턱뼈에서 조개껍데기를 꽂아 넣어 앞니처럼 보이게 한 흔적이 발견됐다. 마야 문명지에서 발견된 이 20대 여성의 미라에서 잃어버린 치아를 되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이 포착된 것이다. 이처럼 상실된 치아를 복구시켜 음식을 잘 씹고 심미적으로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인공치 연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류의 염원이었다.
인공치아 또는 제3의 치아로 불리며, 상실된 치아를 대체하는 임플란트는 이미 치과치료방법으로 널리 시술되고 있다. 하지만 종류, 가격, 기능이 제각각인 탓에 ‘나에게 맞는 치료법’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로 임플란트 기술을 도입한 엔와이유 치과 김진환 원장을 만나 임플란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진환(60) 원장과의 일문일답.
임플란트에 대한 개념도 희미했을 당시 뉴욕대학교 치과대학 임플란트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슈바이처 책을 읽고 나니 남을 도울 수 있으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의사’라는 직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치과의사를 결심한 것은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원서로 공부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의료기술이 40년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생을 거는 직업인만큼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미국에 있는 버팔로 뉴욕 치대에 편입했습니다. 뉴욕대학교 치과대학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임플란트과를 설립한 이후 다양한 임플란트 시스템을 사용하여 임상연구를 해온 곳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미국의 <US News>라는 유명 잡지에서 매년 학교 순위를 매기는데 59개 치과대학 중에 6위에 선정될 만큼 실력 있는 학교입니다.
뉴욕에서의 경력이 화려하시던데요. 다시 한국으로 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뉴욕에서 개원도 하고, 뉴욕 치대 임플란트과 주임교수를 맡으면서 상당히 안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1995년 치주학회 초청으로 서울대 강당에서 임플란트에 대한 강연을 하며 ‘임플란트를 공부하지 않으면 2류가 될 것이다’라고 발언했죠. 국내에도 체계적인 임플란트 연수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11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미국에서 잘 나가는 치과의사가 뭐가 아쉬워서 한국에 가느냐고 말리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한국행을 고집한 이유는 저만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임플란트가 한국치과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고, 나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성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거든요. 여기 학회에 있는 30여 교수진 보이시죠? 그들이 바로 제가 꿨던 꿈의 실체입니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1년 9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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