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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양사 합병과 관련한 주총을 하루 앞둔 16일 제일모직 리조트·건설 부분이 입주해 있는 서울 태평로 옛 삼성본관 앞에 걸린 그룹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
지난 7월 1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개최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날 임시주주총회의 참석률은 84.73%로, 60%대의 통상 주주총회 참석률을 훨씬 앞질러 합병안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당초 팽팽한 접전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삼성물산이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을 적지 않은 표차로 따돌리고 제일모직과 합병을 성사시켰다. 이로써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안착될 것으로 보인다. 합병과정과 이후 삼성가의 계열사 재편을 확인해 봤다.
소액주주 표심이 결정적
상황은 의외로 전개됐다. 당초 엘리엇 측이 외국인 투자자 표를 결집시키고 개미투자자까지 합병에 반대한다면 삼성물산으로서도 안심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 합병안에 찬성한 주식은 주총에 참석한 주식의 69.53%로, 합병승인을 위한 출석주식의 2/3에 해당되는 55.7%보다 378만 주 이상의 찬성을 더 얻어내 엘리엇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삼성물산의 우호지분 최대 42.14%를 포함해 국민연금을 제외한 국내기관 지분 11.05%도 찬성 쪽으로 돌아섰고, 외국인 투자자와 소액주주 중 1/3 정도가 합병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각 제일모직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주주총회가 개최돼 만장일치로 합병승인 안건을 통과시켰다. 개회 17분 만에 합병안을 결의했고, 현물배당과 정관변경 등의 안건도 통과됐으며, 이날 참석주식 수는 85.80%였다. 그러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헤지펀드 엘리엇은 주주총회가 끝난 후 실망감을 드러냈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고, 엘리엇의 대리법무법인 넥서스도 주주총회 전 삼성이 이길 경우에도 별도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투자자·국가소송 제도를 이용해 한국정부를 제소할 가능이 높은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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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1월 30일 당시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기념식장을 나서고 있다. |
9월 1일 통합법인 재탄생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오는 9월 1일부터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그룹 창업정신을 잇는 차원에서 사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통합 삼성물산으로 재출범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0.35의 주가비율에 따라 삼성비율을 합병하는 방식을 채택해왔는데,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하면서 공방을 이끌어 왔다. 이번 합병으로 건설부문 통합과 신수종 사업은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의 상사부문과 제일모직의 패션, 식음료, 레저사업의 결합을 통해 삼성물산은 건설, 바이오 등을 포함한 생활전반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의식주, 레저, 바이오 선도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양사의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도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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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7일 양재동 aT센터에서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사진제공 삼성물산). |
다음 라운드는 삼성전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라는 고비를 넘어섰지만, 이재용 체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해야 한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다음 재물로 삼성전자를 고를 가능성이 크고, 이재용 부회장 역시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해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사실상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삼성SDS와 삼성SDI의 합병가능설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삼성전자의 보유지분이 0.6%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의 보유지분(11.3%)이 상대적으로 많은 삼성SDS를 활용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인수합병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외국계 헤지펀드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게 되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삼성물산 합병 때 엘리엇과 같은 외국계 헤지펀드의 경우가 재연된다면 삼성으로서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헤지펀드는 굳이 1% 이상 지분을 모을 필요 없이 소량의 지분만 취득한 후 설득력 있는 명분을 내세워 주주들을 규합해 다시 공격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외국인 지분이 52%에 달할 정도로 많은 것도 한 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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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총 진행요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을 찬성률 69.53%로 가결했다(사진제공 삼성물산). |
이재용 체제 안착할 것인가
삼성전자는 차지하고서라도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영성과를 보여줘야 안심할 수 있다. 삼성은 통합 삼성물산의 매출을 2020년까지 60조원 규모, 세전이익은 4조원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하고 지분율을 늘려나가는 것이 최종 완성된 그림이라면, 그 시금석이 되는 것이 통합 삼성물산의 향후 실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그룹은 외국계 헤지펀드에 전력을 그대로 노출해 버렸고, 외국인 지분율이 더 많은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물산처럼 삼성그룹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공산이 더 크다. 실제로 2차 공습을 준비하고 있는 엘리엇은 최근 삼성SDI와 삼성화재 지분을 1% 이상 사들이고 있어 회계장부열람권이나 주주대표 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다. 소액주주 역시 향후에는 삼성물산 합병 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장과 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이 부회장 체제 안착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