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지재단 박준영 회장과 부친 故 범석 박영하 박사는 일생을 의료봉사와 인재양성 그리고 불우이웃을 돕는 등 항상‘나눔과 실천의 삶’을 살아왔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돈이 없어서, 또 병이 깊어서 치료를 받지 못할 때 병을 고쳐주고 의녀를 양성하기도 했던 혜민서, 역병지역에 파견을 가 백성들을 살리고 가난을 구휼하던 활인서처럼 바로 을지재단은 무의촌과 불우이웃을 넘어 북한, 해외까지 기부와 봉사를 통해 교육과 의료봉사를 60여년간 이어 왔다.
어릴 적 어른들이“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하고 물으면“의사요. 훌륭한 의사가 돼서 돈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어요.”라고 하는 말을 흔히 들었다. 하지만 그대로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의사가 되기도 쉽지 않지만 나눔의 의술을 펼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돈은 벌기보다 지키기가 어렵고, 지키기보다는 누리기가, 또 누리기보다는 베풀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박 회장의 기부와 교육을 통한 의료인 양성, 국내외 의료지원 활동은 각박한 현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박 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박준영 회장은 병원을 운영하던 초창기부터 지역민을 위한 봉사활동, 무의촌 봉사활동, 질병으로 고통받는 후진국 국민들에 대한 해외의료봉사활동을 통해 말없이 의료봉사활동을 펴왔다.
박 회장은 2008년‘을지한마음봉사단’을 구성했다. 평소에도 무의촌 의료봉사활동에 힘써왔던 박 회장은 을지대 재학생과 을지대학교병원 그리고 을지병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을지한마음봉사단을 이끌고 필리핀, 몽골, 라오스 등지에서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박 회장은 특히 해외봉사활동이‘한번으로 끝나는 봉사’가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위생에 신경쓰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해당국가 의료진을 양성하는 등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몽골과의 10년 장기프로젝트도 이런 철학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외롭게 투병중이던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 김일 선수를 94년 한국으로 이송, 을지병원 1인실에 입원시켜 임종 때까지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것도 박 회장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1995년에는 재일한국민단과 의료지원협정을 체결해 70만 재일교포 중 연간 본국 입국자 30여만명에 대한 건강검진, 상담, 입원치료 등 진료 전반에 걸친 의료지원 사업을 벌였다. 2012년 10월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협약을 맺어 희귀 난치병 어린이 돕기 성금을 마련하고 전 세계 어린이 지원을 위한 모금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1997년에는 범석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인재양성에도 매진했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교육비 지원과 우수학생 양성을 위한 면학 환경 조성에 힘쓰고, 의학발전을 위해 의·생명 의학자들을 위해 범석상을 제정, 지원하고 있다. 2015년 현재까지 고등학생 562명, 대학생 1,182명이 장학금 혜택을 받았고, 의·생명 의학자들의 논문을 발굴하여 그동안 348명에게 약 16억원을 지급했다. 2011년에는 범석상을 확대·개정(의학상, 논문상, 언론정책상, 봉사상)하여 51명에게 약 20억원의 상금을 지급했다.

박 회장은 대북의료지원에도 앞장섰는데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해외 평양 의학 과학 토론회에 남쪽 대표단으로 참석했을 당시 북한의 낙후된 의료수준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북한은 장비, 의약품 등 의료환경면에서 우리나라 1960년대 수준이었고 북한주민들이 병에 걸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을 보고 박 회장은 어떻게 하면 고통받는 북한주민들을 의학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북한이 도움을 요청해 왔고, 이에 2005년 평양 조선적십자종합병원의 낙후됐던 수술방을 리뉴얼하기 위해 20억여원을 지원해 서울의 을지병원과 똑같은 현대적인 종합수술장으로 준공시키고, 남북한 의사가 함께 집도하는 역사적인 공동 수술도 함께 진행했다. 박 회장은“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약 한알이 없어서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2005년 6월에는 평양시 낙랑구에 연간 500만병 정도의 수액제를 생산할 수 있는 정성수액약품제조공장을 건설하는 등 북한 병동의 현대화 작업을 도왔다. 또한 2007년 11월 조선적십자병원 약무병동 신축을 위해 전액을 투자했다. 지상 3층 연면적 570여㎡ 단독건축물로 고압증기멸기를 비롯해 시간당 알약 3만정, 수액 100리터를 각각 생산하는 현대화 시설은 물론, 북의 전력사정을 감안해 항시 안정적으로 전기 공급이 가능한 CVCF(전압 및 주파수변환기)까지 설치해 외래 및 입원환자의 약 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지원했다.
한편 박 회장은 민, 군 유대를 위해 2011년 1월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을지부대와 자매결연을 체결, 체력단련장 건립과 병사들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지원하기 위을 매년 2,000만원을 쾌척하는 등 지금까지 9,500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이러한 박준영 회장의 리더십의 표본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을지재단 설립자인 故 범석 박영하 박사의 소천 때도 드러났다. 박영하 박사가 남긴 전 재산 172억원을 모두 학원과 병원에 기부한 것이다. 본인의 멘토였던 선친이 살아온 길을 생각해 주택을 포함한 전 재산을 기부했다. 그 이후에도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위원장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와 함께 실의에 빠진 지역민을 돕기 위해 의료봉사 및 무료법률상담 그리고 대민지원 활동을 활발히 펴나가고 있다. 올해 1월 발생한 의정부시 의정부동 아파트 화재사건 때에도 피해 주민을 돕기 위해 1억원을 기탁했다. 또 이번 메르스 사태 때 추가 감염자가 없는, 가장 모범적인 대처병원으로 평가를 받은 을지대학교병원과 24시간 환자곁에서 헌신한 직원들에게 사재 1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박 회장은 이렇게 끊임없이‘인간사랑 생명존중’의 이념을 실천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이 선친과 함께 법인에 출연한 사재만 360억원이나 된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능히 극복하고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 모두 을지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나눔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을지재단의 시작
을지재단의 설립자이자 박 회장의 부친인 故 범석 박영하 박사는 1956년 을지로에‘박영하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무료진료도 마다하지 않는 박 원장의 성실함이 소문나면서 박영하 산부인과는 개원 1년만에 외래환자가 200여명에 이르렀고 일본식과 한옥을 겸한 주택 2층 5칸의 온돌방을 개조한 입원실은 항상 환자들로 북적였다.‘의사는 한시도 환자를 떠날 수 없다’는 신념으로 1년 365일, 일요일까지 진료를 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박영하 산부인과’는 이후 발전을 거듭해 1967년 종합병원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개인 소유였던 병원을‘재단법인 을지병원 유지재단’으로 바꾸었다. 이것이 바로 을지재단의 모태다.

을지재단의 성장Ⅰ- 최첨단 시설과 의료장비, 뛰어난 실력과 따뜻한 심성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병원
1995년 서울 노원구에 700병상의 노원을지병원을 비롯해 2004년 1053병상의 중부권 최대 병원인 대전 을지대학교병원, 강남을지병원이 있으며, 2019년 의정부 미군 반환기지에 경기북부 최대 규모의 을지대학교 부속병원이 개원예정이다.‘서울에 집중된 의료혜택을 지방에서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故 박영하 박사의 철학으로 인해 1981년 대전시 중구 목동에 개원한 을지병원은 1997년 을지의과대학교가 생기면서 지금의 을지대학교 병원의 체제를 갖추게 됐다. 강남을지병원은 아이들의 성장과 학습발달을 위한 성장학습발달센터를 주축으로 여성의학센터, 족부센터, 건강증진센터의 4대 특화센터로 운영되고 최근에는 중독브레인센터가 생겨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중독, 알코올 중독 등을 예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강남지역에 자리잡은 만큼 독특한 외관과 국내최초의 화석전시실인‘올드스토리뮤지움’을 개관해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다.

을지재단의 성장Ⅱ- 의학발전을 위한 인재양성의 메카 을지대학교
박 회장은‘육영사업을 하고 인재를 양성하라’는 할아버지(박봉조)의 유언을 제사 때마다 아버지를 통해 들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는 학교를 세웠고 아들인 박 회장은 많은 인재를 길러 열매를 맺고 있다.
1983년 학교법인 을지학원을 설립해 서울보건전문대학을 인수, 1998년에 서울보건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2006년 12월 대전의 을지의과대학교와 통합이 승인되면서 을지대학교로 개편됐다. 을지대학교는 의·생명중심의 대전캠퍼스와 보건·의료중심의 성남 캠퍼스가 있어 양 캠퍼스에는 5개의 단과대, 23개학과 3개 대학원에서 총 5,000명의 보건·의료인재들이 연구 정진하고 있으며, 졸업생들은 의사국시-간호사국시 등 각종 국가자격시험을 통해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특히 을지대는 2003년 이래 6년 연속 졸업생 전원이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했으며, 연 200명 졸업생을 배출하여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간호학과 역시 14년 연속 전원 국시에 합격, 교육 및 의료계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성남캠퍼스에는 1999년 국내대학 최초로 장례지도과가 생겨 매장중심의 장례문화에서 화장중심의 장례문화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고, 천안함 사건때는 훼손된 시신을 현대의학기술을 총동원, 실물에 가깝게 복원시켜 국내의학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 사건사고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빈번해짐에 따라 1995년에는 응급구조학과를 개설해 현장 응급상황에 전문적인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해 내고 있다.
취업률이 80%를 넘는 을지대학교는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주 이상의 국내외 사회봉사를 해야 하고 심폐소생술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이는 환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환자의 입장에서 치료하는 가슴이 따뜻한 의료인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박 회장은 신입생을 뽑을 때도 인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을지대 관계자는“이것이 바로‘인간사랑, 생명존중’의 재단설립 이념실천의 첫걸음”이라며“박 회장은 자신의 의료지원이나 봉사활동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지만 나눔의 정신이 사회 전반에 걸쳐 퍼졌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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