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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석공예가 최서규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보여주는 돌,
그 돌에 예술적 혼을 담아 가치를 더해주는 석공예가 최서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아름다운 석조예술 문화를 창조했다. 이를 증명하듯 우리나라 곳곳의 사찰에 가보면 많은 석불과 탑이 있다. 그 많은 석불도 그 얼굴의 눈매가 다르고, 미소가 다르고, 자세도 다르다. 서로 다른 예술 혼을 가진 석공들의 손길에 따라 수많은 예술작품이 만들어졌다. 한낱 돌덩어리지만, 정성을 다해 다듬고 만지는 손길로 작품을 탄생시키는 석공예 장인이며 한때 원광대 늦깎이 미대생으로 유명했던 최서규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어떻게 석공예를 시작하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이 예술적 소질을 계발해준다며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합니다만, 우리 때만 해도 예술가는 가난하다며 어른들이 못하게 했지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사정도 안 되고 결정적으로 색맹 판정을 받아 포기하고 군대에 갔어요.


제대하고 조각을 배우려고 한양목공예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조각하는 게 좋아 밤낮없이 하다가 십이지 테이블로 ‘ 제1회 전북노동문화제’에서 특선을 받았지요. 그때 일신석재에 스카우트돼서 돌조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인연이 되었지요.





또 2003학년도 당시 원광대 최고령 신입생(52세)으로 순수미술학부 환경조각과에 입학해 화제가 되었는데, 어떻게 늦은 나이에 대학공부를 시작할 생각을 했나요?


제가 익산에서 제1, 2회 돌문화축제 조합장이었는데, 대학 졸업장이 없다 보니 괜히 여러 부분에서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돌을 잘 다루는 석공 기술자보다 학식과 기술을 두루 갖춘, 말하자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해 대학 진학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 애들도 대학생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용기가 대단했지요.



아무래도 재료가 돌이다 보니 작품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 힘과 노력이 필요하겠는데요. 또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


네, 우선 작업하다 보면 미세한 돌가루를 흡입하게 돼요. 그래서 생명을 건 작업이라고도 말합니다. 제24회, 27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한 작품 ‘고향’과 ‘2008’, 제12회 순천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옛사랑’ 등은 기억에 남습니다. 또, 원광대학교 60주년 기념탑 건립에 일조한 것도 잊을 수 없지요.



앞으로 활동계획은?
우리가 여행을 하다 보면 그 마을이름에 유래가 있는 곳이 꽤 많아요. 그런데 그냥 돌에 마을 이름만 새겨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런 마을에 유래를 담아 그 마을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작품을 만들어 세워두고 싶습니다. 이건 제가 대학에서 환경조각을 전공했기 때문에 생긴 꿈이기도 합니다.



기자 뒷말


원광대 지도교수였던 최병길 교수는 석공예가 최서규 선생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제자라고 말했다. 재학 4년 동안 자식 같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장학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함께 작업 후 정리와 청소 등 궂은일을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제자지만 배울 점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흔히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젓가락을 사용해 손재주가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적인 감각, 은근과 끈기, 노력이 없다면 멋진 작품을 탄생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자는 최서규 장인과의 인터뷰를 끝내며 예술적 감각이란 하늘로부터 부여받는 타고난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작품을 구상해내는 그의 영감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돌을 만져 일반인의 2배 가까이 커진 손,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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