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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로힝야 유혈사태’ 국제사회 비난…앙웅산 수치, ‘조작된 가짜뉴스’ 반박


로힝야족 유혈사태를 묵인한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을 향한 이슬람권 국가 지도자와 고위관리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국가를 중심으로 계속되는 로힝야족 학살 반대시위는 러시아까지 확산했다. 로힝야족 반군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은 그동안 자신들을 학살하고 차별해온 미얀마에 저항하겠다고 선언하고, 8월 25일 경찰초소 30여 곳을 습격하고 군기지 침투를 시도했다. 이후 미얀마는 이 단체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소탕작전에 나서면서 사상 최악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지금까지 로힝야족 반군 370명을 포함해 공식집계된 사망자가 400명을 넘었고, 유혈충돌을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난민은 9만명에 육박한다. 국제사회가 이번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지만 미얀마 측은 소탕작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얀마군은 서부 라카인주 마웅토 일대를 군사작전지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미얀마 정부는 이를 곧바로 승인했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있는 인도 아대륙에서 살던 로힝야는 불교국가 미얀마 내 이슬람 소수민족으로 인도아리안족으로, 고유 언어를 사용한다. 방글라데시와 태국,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에도 일부가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엔 수세기 전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885년 영국은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면서 수탈한 대규모 농지를 경작할 노동력으로 미얀마 근처에 있는 인도계 무슬림들을 이주시켰고, 이들은 불교도인 토착민들과 문화적·종교적 갈등을 빚었다. 또한 제1차세계대전 이후 인도계 무슬림들이 미얀마로 들어와 가난한 토착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원성을 샀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뒤에 미얀마 정부와 의회 요직을 로힝야족 출신이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독립국을 세운다는 목표로 활동한 로힝야 전사도 있었다.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로힝야족은 자치권을 요구하였지만, 1962년 쿠데타 이후 집권에 성공한 네윈 장군은 20여년간 로힝야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펼쳤다. 이 시기에 로힝야족은 국적을 잃었고, 일부는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등으로 떠났다. 1970년대에는 라카인주 승려와 불교도들이 지역의 인구구조가 변하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로힝야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2년 네윈 정부는 국적법을 제정하면서 버마어를 사용할 수 있고 가족이 독립 전에 미얀마에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국적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 로힝야는 '뿌리'를 증명할 수 없었다. 군부 통치시절에 로힝야에 대한 탄압은 반복됐다. 불교도들 사이에선 반무슬림 정서도 확산됐다. 특히, 억압은 2011년 이후 격화됐다. 군부가 문민정부로 이행되는 시기였다.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135개 소수민족이 국적을 인정받았지만 이들은 제외됐다.


2014년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라카인 행동계획’을 발표하였으나, 1948년 이전부터 조상이 미얀마에 거주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로힝야족이 아닌 벵갈리로 등록할 것을 전제로 하여 실효성은 없는 것이었다. 로힝야족은 특히 벵골지역은 라카인주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미얀마에선 서부 라카인주에 약 110만명이 살고 있다. 라카인주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난민촌에 거주하고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국의 승인 없이는 라카인주 거주지조차 떠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2014년 미얀마에서 30년만에 처음 진행된 인구총조사에서 로힝야는 제외됐다. 미얀마 당국과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불교도들 대다수는 이들을 '벵갈리스'라고 부르며 불법 이민자로 여기고 있다.


1978년에는 군사작전을 펼쳐 대규모로 로힝야족을 검거하였으며, 이 작전을 피하여 약 20만명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하였으나, 1만명 이상이 굶어 죽고, 나머지는 대부분 미얀마로 강제 송환되었다. 1991~1992년에도 약 25만명이 박해를 피하여 방글라데시로 피난하였으며, 2012년의 비상사태 때에도 약 14만명이 미얀마를 떠났다. 하지만 이들은 반겨주는 곳은 극히 드물다. 인접국인 방글라데시 또한 이들을 난민촌에서 생활하도록 지원하기도 있지만, 강제로 송환한 경우도 허다하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방글라데시에서 국경을 폐쇄하는 등 난민 유입 방지 조치를 취하자 배를 타고 이슬람 문화권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또는 태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향하였다. 다른 국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5년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이들을 서로 받지 하지 않아서 목선이 동남아 해상에서 고립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어민들에게 이들을 구조하지 말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2015년 유엔난민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2012년 이후 보트피플이 된 난민은 8만 6천명에 이른다.


6일 외신보도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인종청소) 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논란 속에 유엔 사무총장이 미얀마의 인종청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자 아웅산 수치는 로힝야족 학살 주장이 문제를 악화하기 위해 조작된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수치는 그간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인종청소 등을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한, 수치는 6일 터키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로힝야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테러리스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도 로힝야족 난민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수치는 “잘못된 정보가 많이 퍼지고 있다.”며, “테러가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가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로힝야족 사태가 갈수록 확산되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무슬림 국가들은 탄압을 중단하라며 미얀마 당국에 압박을 가했다. 무슬림 인구가 밀집한 러시아 체첸 지방에서도 4일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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