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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소운 박병옥 한글 서예 예술의 대가

안으로는 우국충정 담고 밖으로는 세계 문화와 교류

서예가는 문방사우(종이, , , 벼루)를 통해 아름다운 서체와 독특한 풍격으로 서예 예술을 창조해냈고, 서예 예술은 오늘날 세계 문화와 소통하는 교량 역할을 하며 신인류 문명을 이끄는 힘이 있다. 서울미술협회 원로 및 예술계에서 한글 서예 예술의 대가로 유명한 작가가 있다는 추천을 받아 이달의 문화 인물로 초대한다.

 


서예는 시대의 정신과 문화, 사회를 아우르는 예술

 

취재 약속 시간에 맞춰 인천 남동구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소운서예 서실로 들어섰다. 먼저 은은한 묵향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먹물색이 밴 수십 종의 붓에서 글씨를 쓸 때의 엄숙함이 느껴지고 무엇보다 한쪽 벽면 가득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서책에서는 고전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릇 서양의 필기도구는 균형 잡힌 직선만 그리고 감정은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면, 붓으로는 모든 정신을 표현할 수 있으며 가장 부드러운 붓으로 가장 강렬한 글씨를 쓸 수 있다.

 

화단의 평론가들은 박병옥 작가는 고전을 강독하고 고전 속에서 발췌한 문장을 한 점이든 한 획이든 균형과 조화에 신경 쓰면서 자신만의 서체로 한글 서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서체 속에 우국충정을 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우국충정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수양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헌신하려 걱정에 젖는 예술가의 마음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걱정이 많은 이 시점에 다시 거세게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한글 서예를 통해 대한민국 문화와 세계 문화가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박 작가는 경남 거창 출생. 지난 40여년간 서예가의 삶을 걸어오면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고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을 정독했으며 고전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눈이 생겼다.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에 대한 고찰송강가사 판본이 서예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소고등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은 훈민정음이 반포 된지 불과 18년 후인 1464(세조 10)에 직접 손으로 쓴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육필본이다. 내용에서 절을 중창하는데 왕이 직접 수계하고 지방의 아전들이 무엇을 시주했는지 알 수 있다.

서예인들은 종이 안에 하늘과 땅이 들어있고, 글씨를 쓰는 순간 우주와 만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박 작가는 종이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룩했다. 한글 서예와 한문 서예는 일필휘지 역동적이고, 흙에 글씨를 새겨 넣어 마치 큰 벽화를 감상하는 듯한 도자각, 돌에 글씨를 새겨 넣는 전각, 작품의 균형감을 살려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유인 등은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작가의 말처럼 실물을 보지 않고 그림과 글씨를 표현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난을 재배하는 전문가이며 매년 수차례 탐매여행을 통해 20여분의 분매도 관리하며 감상하고 있다.

 

창조는 또 다른 창조를 낳는다

열정등 한글의 아름다움 세계에 알려

 

박 작가는 2009년 제54회 현충일 당일 삼성동 코엑스 앞 광장 영동대로에서 열린 국민 대화합 마당 17천여 손도장이 찍힌 태극기 제막식 후, 그 태극기 아래에서 거대한 붓으로 우리 문화 세계 속에주제로 독특하면서 힘찬 기법의 한글 서체를 선보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2008년도 파리에서 열린 한글-아름다운 동행전시회에서 발표한 작품 열정을 통해 외국인이 본 한글의 모습은 어땠을까. 한글을 읽지는 못해도 열정의 느낌이 잘 전달돼 감동과 호평을 이끌어냈다. 일필휘지에서 피어나는 작품 탄생은 이랬다. “벼루에서 먹물이 주르륵 흐르도록 붓을 풍덩 담그고, 담갔던 그 붓을 들면서 바로 내려치듯 글씨를 썼습니다. 먹물이 튀는 방향과 마지막 완성까지 쓰기 위한 먹물의 농도와 속도 등을 고려하며 몇백 장씩 연습했습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에펠탑 광장에 서 있는 문자기둥에서 평화라는 한글을 보았을 때 흥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한글 서예로 방향을 잡는 위대한 계획이 시작됐다.

한글은 왕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문자로서 창조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세계에서 11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문자이며 지금은 세계 한류문화 바람을 타고 한글 수출도 한다. 박 작가는 한글을 만든 원리, 글자꼴의 변화 등 훈민정음 반포와 궁체 자료 등을 공부하고 자신의 정신을 넣어 박병옥 서체를 완성했다.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특선은 창의성을 인정받아 더욱 빛났다. 201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한인문화회관에서 열린 열정 박병옥 한글서예전은 한글과 한문 서예, 전각, 문인화 등 작품을 선보여 외국인뿐만 아니라 교포들에게 한국 문화의 자긍심을 심어줬다.

 

 

치열한 예술의 혼 엿보다

 

주변에서 박 작가는 시시한 남자보다 낫고 꿈도 크고 격이 높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전각에 능하고 난과 매화를 두루 섭렵하니 겉보기에도 치열함이 느껴진다. 오늘이 있기까지 단 하루도 일분일초도 허투루 허비하지 않았다. 도자각 전시회 준비는 강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 한 달에 78일 시간을 만들었다. 도자 공부를 하는 장소는 하동, 먼 거리도 마다않고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가 사사했다. 밤에 우는 새소리를 벗 삼아 혼자서 물레를 차는 흙을 홍두깨로 밀어서 판으로 만들고, 커다란 하나의 도판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조각을 이어서 붙이는 작업은 흙의 수분이 너무 말라도 덜 말라도 안 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도자각 작품 하늘만큼 땅만큼’, ‘창조등이 탄생했다.

전서체 작품 목계는 장자의 달생편 우화를 들으면 글씨에 담긴 깊은 뜻에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박 작가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왕이 투계를 굉장히 좋아하여 하루는 투계 조련사에게 최고의 닭으로 훈련시키라고 명했다. 훈련은 잘 되었는지 조련사에게 물으니 아직 멀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후 다시 물으니 닭이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오만하다고 말했다. 왕은 또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조련사는 네~목계처럼 끄덕도 하지 않는다며 훈련이 끝났다고 말했다. 목계가 만들어지기까지 왕이 조련사의 말을 경청했던 것처럼 경청이 왜 중요한지 여러 가지 깨달음을 주는 교훈이다. 이러한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탄생한 작품인 것이다.

 

그 외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전각 작품으로 표현한 훈민정음각, 부처의 가르침을 새긴 반야심경각,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유인각, 한나라시대 때 기복문자 새긴 각,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췌한 삼족오와 기복문자를 새긴 각은 금가루를 써서 탁본을 했으며 광개토대왕비 글씨체를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글씨에서 그 사람의 정신 세계와 가문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데 박 작가의 삶이 궁금하다.

 

예술의 태동은 선대, 버팀목은 모친과 남편

그리고 잘 지은 자식농사와 가족의 화목함

 

흔히 사람은 아버지에게서 뼈를 빌리고 어머니에게서 살을 빌려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박 작가는 아버지도 그립지만, 동네 사람들로부터 할아버지는 지역 유지이고, 문인들과 교류하고 호인이며 부자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라며 대들보에 쓰여진 상량문, 대문에 적힌 입춘첩 등 집안 곳곳의 글씨를 보면서 참 잘 썼다~ 누가 썼을까? ”라고 일상에 던지는 궁금증에서 먹으로 예술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을까. “친구들은 엄마가 무서워서 집에 놀러 오지 못할 정도였죠라며 편모슬하에서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더욱 엄했다고 한다. 이무출 여사는 박 작가의 어린 시절에는 엄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교육의 정신을 가리켰고, 서예 대가인 지금에는 자식의 실력을 인정하는 다정한 엄마의 모습으로 대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딸로 태어나고 싶고 깊이 존경한다고 표현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박 작가는 결혼을 하고 또 다른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다. 남편은 동네에서 아래윗집에 살았던 소꿉친구였다. 혼수는 처녀 때부터 푹 빠져 있던 난 화분을 가져가 거실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참으로 특이한 혼수품이다. 부군 김희대 씨는 난에 신경 쓰는 만큼 신랑한테 신경 좀 써봐라며 넌지시 투정 섞인 농담을 건넸다. 박 작가는 남편에 대해 아내를 항상 인정해주고 작품이 탄생되기까지 조용히 뒷바라지 해주는 큰 후원자입니다. 고맙고 존경합니다고 전했다.

 

부부는 사랑의 결실로 슬하에 장남 윤성 씨, 차남 진서 씨 두 형제를 두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서예와 친숙했다. 큰 아들은 가문의 뿌리를 이어 집안의 기둥으로 성장했고 둘째 아들은 예술인의 길을 대물림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 국악과 거문고 전공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적 재능, 그 예술을 꽃피우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모친, 친구 같은 남편의 후원 그리고 잘 지은 자식 농사를 보면서 가문의 뿌리와 가족의 화목함이 절로 느껴진다.

 

소운서예 서실을 찾는 수강생들에게 한마디

 

조급한 마음을 갖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붓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으로 대하고 계획은 멀리 내다보고 열심히 하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방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멋있는 인생을 준비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서화 예술을 감상하는 법이 따로 있는지 질문했다. 작품 속에 내면 세계를 표현하고 그것을 보고 상대방이 감동하면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글을 맺으며

 

박병옥 서예가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을 비롯해 수많은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빛나는 성과를 이뤄냈다. 한국서예청년작가전에서 창조성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초대전과 개인전을 수십 차례 열었다. 경남미술대전, 신사임당의 날 휘호대회 등 서예대전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예리한 관찰력으로 작품을 뽑아 예술인들의 꿈을 응원했다. 현재는 대한민국미술대전 및 서예대전의 초대작가이며 관련학회, 협회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면 관계상 화려한 경력을 줄일 수 밖 에 없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취재를 통해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역동감, 신비로움과 창조성을 돋보이게 하는 조화, 대가라는 표현에 겸손한 모습 등 박병옥 서풍의 높은 안목과 기품을 엿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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