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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다방의 추억 ‘커피 한잔하실래요?’

(대한뉴스 윤병하 기자)=다방(Tea Room)은 문자 그대로 대중에게 차를 파는 곳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가장 이용하기 편리한 '약속의 장소', '휴식의 장소'로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친지나 혹은 만나고 싶은 사람과 연락을 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누고, 음악도 감상하며 잠시 사색도 즐길 수 있어 현대인들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만약 다방이 없었다면 도시 생활에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방은 원래 프랑스 파리의 명물인 커피전문점 카페를 본뜬 것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선 왠지 광복 이전부터 카페는 술집으로 인식됐으며 다방은 카페와는 전혀 상관없는 독특한 한국형 찻집으로 뿌리를 내리게 됐다.

 

만남과 토론이 함께한 만인의 휴식처

국내 최초의 다방은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이 개장한 '카카듀'로 알려졌다. 1930년대에 작가 이상(李箱)도 다방 '제비'를 운영한 적이 있다. 신문물의 일종인 다방은 만인의 휴식처였다. 1950년대 이후 전성시대를 맞은 다방은 대학생들의 단골 미팅 장소였으며, 직장인들끼리 '차나 한 잔하자'는 인사말을 건네게 된 계기가 됐다. 달달한 커피에 날달걀 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30~40여 년 전만 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1950~60년대에 명동 일대의 몇몇 다방들에서는 많은 문인이 모여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만남과 토론을 이어갔다. 충무로가 영화산업의 일번지가 된 것도 전화가 귀했던 시절 영화인들이 그 일대의 다방들을 사무실로 사용한 것에서 연유한다. 1970년대 들어 대학을 중심으로 한 청년문화가 발홍할 무렵 다방은 음악 감상실과 함께 세련된 대중문화를 누리는 공간으로 변모

했다. 다방 한쪽에 뮤직 박스가 있고, 그 안에서 디제이(DJ)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음악과 사연을 소개하던 모습은 기성세대에게 아련한 추억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는 직업전선에 나선 30~40대의 여성들이 소자본으로 장소를 임대해 운영하는 다방이 많았고 비교적 때 묻지 않은 인심도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다방의 시설도 간편했다. 번화가 주변 건물의 1층이나 2층을 빌려 20~30평 공간에 주방과 홀을 만들고 탁자·의자(4인용이 보통)를 배열한 후 출입구 주변에 카운터(계산대)를 설치하는 것이 보편적인 다방 형태였다. 인테리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로 벽면에는 풍경 사진이면 충분했다. 또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의도에서 좌석마다 칸막이를 설치한 업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연탄가스 냄새가 더러 나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람들의 출입은 잦았다. 편의시설로는 전화·전축이 필수적이었으나 당시는 전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부분 암거래로 가설했고, 공중 전화가 일반화되기 이전이라 이용자에게 일일이 사용료를 받지 않는 무료서비스를 베풀기도 했다. 1960년 대 중반부터는 빌딩이 많이 세워지면서 지하실 다방도 늘어났으며 다방이 점차 시민들과 가까워지자 소위 미인형의 '얼굴마담'을 고용해 이윤을 활성화하는 기업형 다방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50-60년대 커피가 회충약? 지금은 직장인의 필수 기호품

광복 이전만 해도 커피는 한국인에게 생소한 식품이었다. 이후 미 군정 시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대중화됐다. 1960년대 중반 월남파병 등으로 커피는 어느새 한국인의 기호품이 되어 갔으며 심지어 가정의 생활필수품으로까지 자리 잡게 됐다. 미군 부대에서 인스턴트커피가 흘러나왔는데, 특히 전투식량인 C 레이션에 들어있던 까맣고 쓴 가루는 한국인들에게 커피의 맛과 향을 각인시키는 계기였다. 그 시절 커피는 회충약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연신 설사를 하면 회충이 죽어서 생기는 현상으로 여길 정도였다. 이후 커피는 소화제, 각성제, 숙취 해소를 위한 해장 음료 등으로 여겨지면서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초기만 해도 외국 여행이 흔치 않았던 관계로 간혹 해외에서 돌아올 때는 색다른 커피를 선물하는 것이 최선의 인사치레로 생각했으며 받는 사람도 흡족해했었다. 다방에선 커피 외에도 홍차·코코아·밀크(우유)와 사이다. 콜라 등 음료수도 팔았고, 술은 일절 팔지 못하게 했으므로 홍차에 위스키 몇 방울을 혼합해 변칙적인 '위스키 티'를 내놓기도 했다. 또 아침에는 조반을 거르고 출근하는 샐러리맨을 대상으로 모닝 커피(계란 노른자 한 개를 띄운 커피)를 개발, 손님을 끌어들였으며 여름에는 얼음을 섞어 냉커피를 팔았다.


특정 외래품으로 판매금지되기도

국산차로는 쌍화차·생강차·녹차 꿀차 등이 있었으나 커피나 홍차보다 좀 비싼 편이어서 소비량이 많지 않았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자동판매기가 보급되기 전이었으므로 다방의 하루 매상 중 커피가 70%를 차지했다. 커피 원료는 1960년대 중반까지 특정 외래품에 묶여 수입이 자유롭지 못했으므로 대부분 다방에선 미군 PX(Port Exchange)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중개 상인이 중간이득을 취하고 공급했다. 1962년경만 하더라도 PX를 통해 엄청난 물량이 반공개적으로 암거래되어 외래품 시장에 범람했었다. 5·16군사정변 후인19641월 군사정부가 특정 외래품 판매행위를 강력히 단속함으로써 한때 커피 원료는 품귀현상을 빚어 다방들이 커피 판매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해 10월 커피 원료는 결국 특정 외래품에서 해금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보다 많은 사람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누구나 커피 하면 다방을 연상했고 커피를 마셔야만 문화인 취급을 할 정도였다. 다방에서 파는 차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었으나 커피가 주종이었다.

도심지엔 커피만을 전문으로 파는 다방도 생겨났다. 커피는 한잔 마시면, 모호하고 둔한 감정을 없애주며 맑은 정신으로 되돌려 준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일면서 직장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커피 한잔 안 마시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직장인들이 나올 정도로 습관적 애음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점심 후에도 동료나 친지들과 어울려 커피 한 잔씩을 마셔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당시의 풍속도였다. 그만큼 커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직장인들에겐 하루를 활력있게 보내는 기호품으로 자리를 굳혀갔다.



70년대 산업화 이후 음악다방 인기

산업사회가 발달하고 인구의 도시집중이 계속되면 경쟁이 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빌딩 주변이나 정류장 부근에 현대식 인테리어로 아담하게 꾸며진 다방들이 자리 잡아 개성을 자랑하며 다방족들을 유혹했다. 또 학교 주변에는 뮤직 박스를 설치하고 디스크자키(DJ)를 고용, 유행하는 경음악의 해설과 세상살이를 이야기하는 다방이 생겨나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어느덧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출입하는 다방을 외면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즐기게 되었으며 외래어 상호가 범람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특징 중 하나였다.


다방의 그늘

다방의 발전적 변신과 호황 뒤에는 어두운 그늘도 있었다. 아침부터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온종일 사무실처럼 공중전화에 매달려 사무를 보는 얌체족이 있는가 하면 '얼굴마담' 이나 종업원 아가씨와 가까워지려고 접근하며 소일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래서 업주들은 종업원을 6개월 이상 고용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기까지 했는데 이는 특정 손님과 친숙해질수록 외상값이 쌓이고 단골손님들도 자연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커피숍의 등장

80년대에 접어들어 대학가에서는 다방이 하나둘씩 '커피숍'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제 다방은 대도시 변두리나 지방의 소도시나 농어촌 등지로 밀려간 듯하며 이른바 티켓다방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예술과 삶을 논하던 추억의 장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편 커피숍은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꾸준하게 변용됐다. 80년대 꾸준하게 늘어난 커피숍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안락한 의자 등으로 손님들을 끌었다. 최근 커피숍들은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해지고 있다. 오랜 전통의 북 카페와 사주카페 이외에도, 갤러리형 카페, 족욕 카페, 산소 카페, 베이커리 카페 등이 그것이다. 물론 커피숍이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남 대치동 학원가에 있는 커피숍들의 경우에는 강남 엄마들이 입시와 교육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로 변신하기도 한다.


주머니 속의 찻값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워야 하는 사람들, 신문 구인란을 들여다보며 직업을 찾는 사람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은밀히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까지 옛 추억 속의 다방은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드나드는 곳이었다. 그 시절 '약속다방'은 왜 그리도 많았던지. 그것이 약속이든 만남이든 휴식이든 중요치 않을 것이다. 이제 익명의 도시 속 공간이 점점 좁아져 가는 탓일까. 저마다의 삶이 자리한 그곳 다방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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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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