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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미사리의 ‘윤시내 열애’

아림미디어엔터테인먼트 오균아 대표는 라이브 카페의 인동초



1998년 하남시 미사리에서 문을 연 윤시내 열애가 탄생 25주년을 맞이하며 라이브 카페 문화의 아이콘 대명사가 됐다. 한때 음악 좀 들었던 지금의 중년들이 속이 뻥 뚫리는 노래를 듣고 싶을 때 찾아가 인생 최초의 덕질을 한 곳이 바로 미사리 라이브 까페촌이었다. 지난 47윤시내 열애를 찾았다. 그곳에서 라이브 카페의 개척자이며 산증인 오균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차디찬 겨울을 견뎌내고 따듯한 봄에 꽃을 피우는 인동초 같은 세월의 강을 건너왔다.

 

Q 윤시내 열애는 어떤 곳인지?

 

라이브 공연은 TV를 보며 듣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귀로 듣는 음악과는 다르다. 어떤 가수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어느 순간 그 노래를 부른 당사자를 직접 만나고 싶지 않겠는가. 직접 가수와 대면하여 듣는 노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음악이다. 현재 라이브 카페 윤시내 열애쉘부르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미사리에는 약 60여 개의 라이브 카페가 성황을 이루며 그 시절 젊음과 낭만의 거리로 불렸다. 지금은 2~3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주류와 비주류 가수 수천 명이 미사리에서 활동했다. 오픈 당시 주변에서는 대형 국민 가수 남진씨를 모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 만나서 초대를 부탁했는데 흔쾌히 수락하고 16개월 동안 무대를 빛내줬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는 방송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 생계와 직결된다. 박강성 씨는 이곳 무대를 통해 긴 무명 시절을 끝내고 스타로 떠올랐다. 그 외 윤시내, 나진기, 모정애, 신웅, 정가연, 조항조, 임희숙, 권용욱, 윤수일, 김연숙, 윤태규, 진시몬, 이도시 등 여러 가수가 많다. 열애의 주인공 윤시내 씨는 매주 토요일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Q 라이브 공연 무대를 찾는 연령층은?

 

1~2시간 남짓 온몸으로 공연을 즐긴다는 것은 일상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가수가 노래를 시작하면 사람들은 온갖 환호성을 지르고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인다. 그 가수가 좋아서 공연장을 찾았으니 신날 땐 함께 춤추고, 차분한 음악이 나오면 조용히 경청하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른다. 공연장의 활력은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어떤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혈기 왕성했던 젊은 청춘이 이제는 원숙한 중·장년층이 되어 찾아오고 있다. 어떤 분은 미국에 이민 간 후 몇 십 년 만에 한국에 들렀는데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윤시내 열애였다. 청춘의 아련한 추억이 그리워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설마 아직 있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도착했는데, 그대로인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열애가 없으면 미사리도 없는 것이다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했을 때 이 자리를 지킨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보람이 컸다. 지금도 멀리 지방에서 찾아오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특별한 효도 이벤트를 여는 등 많은 사람이 찾아와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한때는 촉망받던 유명 가수에서 지금은 윤시내의 매니저로 더 유명하다.

 

매일매일 새 노래와 새 앨범이 등장하고 각종 음원 순위는 매주 오르락내리락 순위가 꿈틀댄다. 한때는 가수였지만 가수의 재능보다는 경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림미디어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는 윤시내, 나진기, 모정애 등 여러 가수가 있다. 그중 국민 가수 윤시내 씨와 매니저로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30년 세월, 계약서 없이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림은 때로는 새로운 가수를 발굴하고 유명 작곡가 선생님의 레슨과 음반 프로듀서 제작 지원, 가수 공연과 방송 활동 지원, 라이브 공연 기회 제공 등 각종 콘서트와 디너쇼 기획과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Q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코로나19로 경영상 어려움은 없었는지?

 

노래는 때로는 삶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진실하게 위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와락 세상을 덮쳤다. 정부 방침에 따라 오후 9시까지라는 과도한 영업시간의 제한은 수많은 소상공인의 피해로 이어졌다. 이곳은 오후 9시부터가 공연의 절정이 시작되는 시간이고, 4인 이상 들어올 수가 없으니 아예 영업을 접으라는 것과 같았다. 일 년 가운데 12월이 성수기인데 전기요금 낼만큼의 수익도 발생하지 않고 매달 수천만 원의 적자에 폐업을 고민할 만큼 고충이 컸다.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손을 놓으면 추억의 자리는 없어질 거라는 생각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배신할 수 없었다

 

Q 윤시내 열애의 미래 청사진은?

 

미사리는 통기타 라이브의 시발점이었으나 하남시 개발로 인해 많은 사람이 미사리 카페를 처분하고 떠났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외식문화와 공연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성향에 변화가 생겼다. 낮 시간대에는 소규모 공연, 각종 모임과 축하 파티 등 연회장소로 대관할 수 있고 가수들의 유튜브 촬영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 일례로 하남문화재단 주관 미사리 홈커밍위크공연은 미사리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는 평가다. 앞으로 미사리 어게인을 꿈꾸며 수많은 가수와 팬들을 모시고 릴레이 공연을 펼칠 것이다. 또한 미사리 라이브 카페 자료를 수집하여 살아 있는 역사를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을 열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지자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홍대가 대한민국 젊음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된 것처럼 미사리 라이브 카페라는 명칭은 어찌 보면 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고유 명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름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가수의 땀과 열정이 녹아있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바로 찾아오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남시를 대표할 만한 문화 브랜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당장 시급한 바람이 있다면 도로 이정표 안내이다. 미사교차로에서 팔당대교, 하남시청방면 이렇게 나오므로 많은 사람이 헷갈리며 춘천 쪽으로 지나쳐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래서 하남시청 옆에 미사리 카페촌을 추가로 표시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윤시내 열애는

 

윤시내 씨의 우수에 젖은 듯한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바로 라이브 카페 윤시내 열애. 전면에는 조항조, 임희숙, 박강성 등의 사진이 걸려있어 이곳이 대단한 가수들이 활동하는 곳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실내로 들어서니 3층 규모의 총 200석 정도 자리가 정돈되어 있다. 무대는 고대 로마 시대 신전이 연상되는 둥근 기둥에서 웅장한 기운이 느껴진다. 마치 가수들의 성전이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맑고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품질의 음향시설은 이곳만의 장점이다.

 

기자 일행이 찾은 날은 가수 신웅 씨가 영수증을 써줄거야외 다수의 곡을, 가수 정가연 씨가 용꿈 꾸지마외 다수의 곡을 불려 분위기를 흥겹게 했다. 공연의 기대도 크지만 의외로 음식의 맛도 뛰어나다는 후문이다. 또한 추억의 한 자락을 꺼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영화 '라디오 스타', ‘범죄 도시 3’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한편, 어떤 직업이든 신뢰가 우선인데 인터뷰를 통해 오균아 대표에 대해 주변에서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대형 가수 남진 씨가 라이브 무대에 서고, 30여 년간 계약서도 없이 윤시내 씨 매니저로 인연을 맺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외 유명 가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윤시내 열애라이브 카페 무대에서 실력을 키우도록 조력한 제작자이기도 하다. 성국, 김연택은 KBS1 아침마당의 도전 꿈의 무대코너에서 5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윤시내 열애쉘부르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기를 기대하며 그 자리를 지키는 오균아 대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윤시내 열애' 메인 무대 가수 신웅, 트로트메들리 세계에서 전설 같은 존재

지금은 신세대 트로트 황제 가수 신유의 매니저로 활동

 

신웅은 1979년 트로트메들리 음반을 발표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90년대를 거치며 당시 비공식 집계로 6년 동안 3,000만 장 이상의 음반이 판매돼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 판매 1로 화제가 되었다. 한마디로 메들리트로트계의 거장이었다. 메들리 음반으로 그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1985년 첫 신곡 무효를 발표하고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그의 노래는 듣고 있으면 삶 속에서 우러나는 가사와 각 연령층에 적합한 노래가 많아 훌륭하다는 평가다. 주요 히트곡은 무효’, ‘영수증을 써 줄 거야등 수십 곡이 있다. 그는 어느 날 가수에서 아들 신유의 매니저 겸 제작자 그리고 작사·작곡가로 변신했다. 신유는 잠자는 공주’, ‘시계바늘등의 노래를 발표하며 트로트 황제 반열에 우뚝 섰다. 그 외 히트곡으로 '꽃물','일소일소 일노일노' 등의 노래를 발표했다.

 

신웅의 최근 근황은 라이브 카페 윤시내 열애에서 메인 무대의 주인공으로 활동하고 있다사실 은퇴한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오균아 대표가 그에게 무대에 한 번만 서 달라고 부탁했다. 오 대표와는 호형호제하는 벗인지라 한 번이 한 달이 되고 지금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 930분부터 한 시간가량 단독으로 진행과 함께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어느 팬은 그가 하얀나비를 부르자 7080 감성으로 되돌아가 모처럼 그 시절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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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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