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군항제는 지난 1952년 4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북원로터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하여 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이충무공 동상이 있는 북원로터리에서 제를 지내는 것이 전부였으나,1963년부터 진해군항제로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향토문화예술을 진흥하는 본래의 취지를 살린 행사와 더불어 문화예술행사, 세계군악의장페스티벌, 팔도풍물시장 등을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봄 축제로 해마다 알찬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군항제 기간 동안 2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국 규모의 축제로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36만그루 왕벚나무의 새하얀 꽃송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 세계최대 벚꽃도시에서 봄날의 추억을 남기려 포토홀릭에 빠지는 사람들과 꽃비가 흩날리는 봄의 향연에 취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출렁이는 모습은 축제의 장관을 이룬다.
1962년 1월 13일, 자주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세계 최빈 국(最貧國)인 대한민국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개발이 시급했다. 이에 신정부는 1961년 7월 22일에 경 제기획원을 설립한다. 경제정책 방향과 수립을 이끈 경제기획원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 구축이 그 목표로 '한강의 기적' '수출 한국'의 시작이었다.
(대한뉴스 안상훈 기자)=한국 독립운동의 34인 이라 불리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한국명 석호필) 박사는 한국을 조국처럼 사랑한 캐나다인이다. 191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내한한 후 3·1운동을 지지한 혐의로 1년간 수감됐다가 캐나다로 추방되었다. 1955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1970년까지 세브란스의대 교수를 지내며 고아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정부는 196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68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1919년 당시 스코필드 박사는 33인의 애국자들이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을 선언한다는 것을 알고 3·1 독립운동에 가담해 세계만방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리고 싶어 했다. 세계 여러 나라 영어신문에 3·1독립운동 때 찍은 사진을 보냈고 거기에 대한 기사를 써서 발표했다.
1920년 3월 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식 (대한뉴스 정미숙기자)=2023년 3월 1일은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일이다. 그럼 제1회 삼일절 기념일은 어디서 어떻게 열렸을까?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3.1절 기념식을 교민들 7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나름대로 성대하게 치렀다. 올림픽 대극장을 빌려 대형 태극기를 걸고 '독립만세'라고 적힌 휘장도 붙였고. 태극기를 세계 여러 나라 국기, 만국기와 함께 장식했다.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황태는 매서운 겨울철 눈보라와 청정한 봄바람 속에서 말리는 명태를 말한다. 황태라는 이름은 함경북도 명천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명태를 말려서 노랗게 변한 것을 지칭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6·25 발발후 함경도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고향의 황태를 잊지 못해 속초, 묵호등지에서 정착해 황태를 만들다가 대관령 일대를 살피다 횡계리를 찾아내 최초로 황태 말리기 작업을 시작하여 생산했다. 뒤를 이어 또 다른 함경도 실향민들이 대관령 근처 용대리에 대한민국 최초로 덕장을 만들고 1964년에 대관령 황태덕장마을이 생기게 되었다.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 김활란(1899-1970)은 일제강점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재단이사장, 대한기독교교육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이다. 김활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양분되어 있다. 여성 계몽 운동 및 인권 운동에 커다란 공헌을 남겼다는 평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및 친독재 인사라는 평가다. YWCA를 설립했으며 여자들의 문맹 퇴치, 여자 교육 활성화, 여자의 사회활동 참여, 남존여비의 인습 타파 등 조선여성의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에 동참했고 농촌교육을 통한 문맹퇴치등 계몽활동에 주력했다. 반면에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친일활동에 가담하여 각종 단체를 결성하거나 발기인으로 참석하는 등 일제의 조선인 동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이유로 이화여자대학 초대 총장이었으나 이화여대 재학생들은 동상 철거를 요구하거나 페인트로 더럽히기도 했다. 얼마 전 타계한 고 김동길 교수는 김활란의 친일 행적이 당시 이화여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기고를 하기도 했다.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1968년 2월 27일 한국일보사에 불이나 구관 4층 건물이 전소되고 7명이 순직했다. 불은 윤전실에서 산소 용접 중 불똥이 윤활유에 튀어 발화, 연1천 5백여평을 순식간에 태우고 1시간15분 만에 진화됐다. 이후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설계되어 사옥 건너편 동십자각 앞 큰 도로와 이면도로가 만나는 삼각주 형태의 대지에 세워진 한국일보 사옥은 2006년 경영악화로 38년을 뒤로 하고 사라졌다.
1971년 전국 동계체육대회가 춘천 공지천에서 열렸다. 동계체육대회는 한강 특설링크에서 개최된 최초의 전국 규모 빙상대회인 1920년 ‘전조선 빙상경기대회’를 효시로 삼고 있으며, 50-60년대까지는 날씨등에 따라 서울 한강, 원주, 춘천 공지천등을 옮겨 다니며 개최했다. 이후 1972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개장되면서 빙상대회는 태릉스케이트장과 동대문 실내링크에서 개최됐다.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어렵고 못살았지만 꿈을 키우며 지내던 시절을 반추해보면서 우리의 불우이웃과 꿈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의미있는 성탄이 되었으면 한다.
1960년대 "국6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중학교도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시절이 있었다. 본고사를 치르고 나면 체력장 시험이 있었다.69년부터는 소위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가 시행되어 소위 뺑뺑이 세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