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은 처음에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 날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73년 3월 30일 "어버이 날'로 바뀌었다.1956년 5월 8일 제1회 어머니날 행사 이후 17년을 기념일로 하다가 70년대에 들어와 “아버지날은?” 라는 아버지들의 섭섭함이 거론되기도 하여 1973년 5월 8일부터는 어버이 날로 기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어머니 날의 유래는 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고아와 남편없이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아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래서 5월 8일 어머니 날 기념일에는 "장한 어머니"로 뽑힌 어머니들에게 상장과 상품을 주는 행사가 많았다. 고시 수석 합격자의 어머니, 유명 운동 선수의 어머니 등 혼자서 아이들 교육에 힘쓴 어머니를 선발하여 상을 주었다.
1923년 색동회를 중심으로 방정환 선생 외 8인은 ‘어린이날’을 공표했다.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이 날은 1939년 일제의 억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46년에 부활되었고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선포하기도 했다. 사진은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위)과 창경궁에서 흥겨운 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아래)
진해군항제는 1952년 4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북원로터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하여 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이충무공 동상이 있는 북원로터리에서 제를 지내는 것이 전부였으나,1963년부터 진해군항제로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향토문화예술을 진흥하는 본래의 취지를 살린 행사와 더불어 문화예술행사, 세계군악의장페스티벌, 팔도풍물시장 등을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봄 축제로 해마다 알찬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군항제 기간 동안 2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국 규모의 축제로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36만그루 왕벚나무의 새하얀 꽃송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 세계최대 벚꽃도시에서 봄날의 추억을 남기려 포토홀릭에 빠지는 사람들과 꽃비가 흩날리는 봄의 향연에 취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출렁이는 모습은 축제의 장관을 이룬다.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景福宮)의 남문으로 경복궁의 정문 기능을 하는 문이며, 월대(月臺)는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로 국가 중요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백성과 소통하던 곳이며 1866년에 건축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전차가 다니기 위한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지하에 묻히게 되었으며, 광화문도 6.25 전쟁 당시 북한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상단 목조 문루 부분은 현판과 함께 파괴되었고, 포탄을 맞은 석축만 남았다. 그 후 광화문은 1968년 3월 15일 복원되어 기공식을 가졌다. 광화문 월대의 복원 공사는 2021년 9월 시작하여 2023년 10월 15일에 현판과 함께 복원식을 가지면서 150여 년 만에 복원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출처] 세계문화박물관
6.25 전쟁의 휴전회담이 추진되던 1952년 3.1운동 기념행사장의 참가 시민들.
(대한뉴스 박배성 기자)=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1896년부터 공식적으로 서양식 역법을 도입하면서부터 우리나라에는 양력·음력 설날이 공존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제적으로 '양력 1월1일'을 설날로 여겨야만 했다. 일본의 양력 첫날을 신정 우리 고유의 음력설을 구정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우리 것은 옛날 것이고 일본 것은 새로운 것이라는 말로 그들의 우월성을 말하려고 신정 구정으로 했던 것이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설날'은 여전히 '양력 1월1일'이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이 돼서야 '음력 1월1일'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 지위를 얻었으나 '구정' 휴일은 당일 하루에 불과했다. 93년 만에 노태우 정권기인 1989년이 돼서야 '구정'은 '설날'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찾았고 휴일 기간도 3일이 되었다. 전통을 지킨 조상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설날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빙상강국의 꿈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일까 피겨스케이팅은 1924년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초창기에는 남자선수들끼리 훈련을 했으며 1948년에 여자피겨선수가 생겨났다. 1953년에는 한강에서 시범경기중에 ‘남녀가 대낮에 손을 잡고 움직인다’는 것이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고 한다.
동해안 침투 무장공비 소탕본부를 방문한 육영수 여사 (1969년 12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