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에너지, 원자재 등 물자가 부족했다. 북한에 집중됐던 에너지, 원자재 등의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물자가 시멘트였다. 석회암지대인 단양에 시멘트공장이 건설되면 30만톤의 생산이 가능했고, 당시 건설 현장 에 소요되던 연 70만톤의 수입시멘트는 국산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됐다. 단양지역에는 성신양회, 한일시멘트, 현대시멘트 등 국내 굴지의 시멘트 회사들이 생산시설을 건설해 가동하는 등 우리나라 시멘트산업 메카로 발돋움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5시간이 걸리던 추석 귀향길 힘든 귀성길... 귀성버스도 북새통 60년대 최고의 추석 선물인 설탕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대통령 쯤 되면 멋지고 좋은 곳에서 휴가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여름 휴가지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은 경호와 안전, 그리고 국정의 이유로 그리 많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은 강원도 화진포 별장, 충청북도 청원군에 위치한 청남대, 경남 거제시 장목면 저도에 청해대, 진해 해군 휴양소등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대한뉴스 조선영기자)=선화예술학교의 초창기 이름은 ‘리틀엔젤스 예술학교’였다. 리틀엔젤스 예술단은 1962년 창립 이후 유엔을 비롯하여 세계 60여 개국에서 6000여 회 초청 공연을 하는 등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었다. 리틀엔젤스단원들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해외공연을 갔을 때, 빈소년합창단이 왕궁의 궁정에 마련된 학교에서 학업과 교육 받는 모습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께 “저희는 집 없는 천사예요. 저희도 빈 소년합창단처럼 한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실기도 연마하고 싶습니다.” 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국가적 공헌을 인정하고 개원을 준비중이던 어린이대공원의 일부 부지를 하사했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학교 건립의 첫 삽을 떴다. 최초의 국산 로켓 발사 공개실험 (1959년 7월 27일) 국방부 과학 연구소 기술진이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3단 로케트 발사 실험을 했다. 국산 로케트는 58년 1차 발사 실패후 1년여 보완을 거쳐 재발사에 성공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멈춤'이 있기 전까지는 졸업식 특수라는 것이 있었다. 학교 근처 꽃집은 몰려드는 졸업식 축하객으로 북새통이었고, 학교 정문에 꽃을 파는 상인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8·15광복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주한미군사령부에 의해 군정청으로 사용되면서 처음으로 중앙청(capitol hall)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건물은 1916년 일제가 식민통치의 위엄을 과시하고자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세워 총독부 청사로 사용하여 왔다. 일제 침략의 상징적 건물이기 때문에 주요 정부기관의 집무실로 사용할 수 없다는 여론에 따라 1986년 6월 23개 전시실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했으나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며 철거되었다.
고궁 스케이트장이 왠지 낯설면서도 정겹다. 실제로 1910년대부터 경복궁 경회루, 창덕궁 후원, 한강 등지에서 겨울철이면 스케이트를 탔다.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면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누각으로 연못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한편으로 고궁 스케이트장은 일제의 창경원 설치 등에서 각인된 잔재를 느끼게 한다. 스케이트는 산골 벽지 논에서도 탈 정도로 한때 국민 스포츠로 각광받았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것은 정확하지 않으나 1965년 당시 언론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 2600개의 전구로 장신된 20m 높이의 매머드 크리스머스 트리를 세웠다는 기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등장한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는 매년 이어져 오다가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에너지 절약시책에 따라 7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었다. 서울시청 앞에 트리가 재등장한 것은 1980년. 그 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는 매년 12월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