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전국 동계체육대회가 춘천 공지천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빙상대회는 1920년 한강 특설링크에서 개최된 ‘전 조선빙상경기대회’를 효시로 삼고 있으며, 50~60년대까지는 날씨 등에 따라 서울 한강, 원주, 춘천 공지천 등을 옮겨 다니며 개최됐다. 이후 1972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개장되면서 빙상대회는 태릉스케이트장과 동대문 실내링크에서 개최됐다.
대한적십자사가 헝가리 난민에게 보내는 구호품을 인천항에서 선적하고 있다. 이는 한 국민이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한 660만원으로 구매한 1만6천800마의 면포로 오스트리아로 망명해온 헝가리 난민들에게 구호품으로 전달됐다.
광복과 더불어 귀환동포들이 생활근거지로 모여들어 터를 잡고 노점을 차림으로써 형성된 국제시장이 6.25전쟁 피난민들이 섞이며 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1950년 말 화재에 이어 1952년과 1953년에도 연달아 화염에 휩싸이게 되고, 특히 1953년 발생한 화재로 가옥 4천260여 동이 잿더미가 되어 약 1만3천29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화재는 어마어마한 물적 피해는 물론 난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키웠다.
새나라 자동차는 1962년 인천 부평에 설립된 현재 한국GM의 전신이다. 그해 11월부터 61년식 닛산의 블루버드 P301형을 부품 수입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블루버드는 1962년 11월부터 1963년 5월까지 2천700여대를 조립판매 했다.
한강에 썰매를 타고나가 얼음구멍으로 낚시하는 노인이 정겹고 여유롭다. 요즘은 한강이 잘 얼지 않고 있어 1980년대 이전과는 달리 얼음낚시가 힘들다. 이는 1980년대 한강정비사업으로 한강의 유속이 빨라지고 깊어졌으며, 물의 오염과 지구온난화의 영향 등의 원인을 꼽을 수 있다. 그 때문인지 1906년 현대식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한강이 한 번도 얼지 않은 해가 7번이나 된다고 한다.
1969년 1월 31일 천안역 부근에서 신호 이상으로 추정되는 열차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남원발 서울행 102완행열차를 부산발 서울행 10열차가 들이 받으면서 20여명이 죽고 1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사망자가 41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병원을 찾아가 사상자들을 위로했다. 이 해에만도 철도 사망사고가 10여 건에 이 넘었다.
6.25전쟁 중 부산시절의 국회 개회 (51. 12. 20) 1948년 5.10선거로부터 1954년 5.20 제3대 국회의원 총선거까지의 6년간은 6.25전쟁과 이에 따른 민족의 남북이동의 혼란 속에서 정당 차원의 정치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6.25전쟁으로 남하한 국회는 임시수도였던 대구에서 문화극장을 임시의사당으로 사용하다 전세가 악화되어 정부와 함께 부산으로 이동했다. 서울이 수복되고 정부가 서울로 귀환하자 국회도 다시 서울 귀환했으나 1.4후퇴로 정부가 다시 부산으로 남하하자 국회도 부산극장을 의사당으로 사용했고, 다시 경남도청 무덕전을 사용하다 1953년 8월의 서울로 환도했다. 사진은 피난지 부산에서 개회된 국회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과 사회를 보고 있는 신익회 2대 민의원 의장이다.
국토의 대동맥 경인·경수 고속도로 개통 (68. 12. 21) 1968년 12월 21일 경인(京仁)·경수(京水)고속도로가 개통됐다. 경인고속도로는 서울에서 인천시 가좌동까지 23.4㎞, 경수고속도로는 서울과 수원간 24.8㎞ 구간이 완공됐다. 경수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의 첫 구간으로 1970년 7월 7일 왕복 4차선 총연장 428㎞(현재는 직선화 등으로 416㎞) 전 구간이 개통됐다. 경부고속도로는 고속국도 제1호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을 기점으로 부산 금정구 구서동까지 연결됐다. 수도권과 영남공업권을 잇는 산업의 대동맥으로, 서울-수원-대전-영동-김천-구미-대구-영천-경주-양산-부산 등 주요 지역을 연결해 전국을 1일생활권으로 만들었다.
새 시대 교육지표로 국민교육헌장 반포 (68. 12. 5)
정부로부터 위문품을 전달받고 있는 수재민들. (58.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