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 대회에서 김봉래 선수가 한국마라톤의 꿈이던 20분벽을 깨뜨리고 골인했다. 그의 기록은 2시간 19분 7초였다. 이후 이홍열 선수가 1984년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14분 59초로 10년 만에 한국기록을 깨며 침체기에 있던 마라톤계에 희망을 안겨주었다. 황영조 선수는 1992년 벳부-오이타마라톤에서 2시간 8분 47초로 준우승하며 새로운 한국기록을 세웠고 현재 최고기록은 이봉주 선수가 가진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7분 20초 다.
1970년 3월 30일 9명의 일본 적군파가 도쿄발 후쿠오카행 일본항공(JAL) 여객기를 공중 납치했다. 요도호에는 승무원 7명과 승객 등 115명이 타고 있었고 적군파는 기장을 권총으로 위협해 평양으로 갈 것을 요구하였다. 범인들은 북한으로 가던 중 3월 31일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한 뒤 승무원과 승객을 인질로 잡고 북한까지 안전한 비행 보장을 요구했다. 결국 김포공항에서 범인들은 한국정부의 설득으로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당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잡고 79시간 만에 북한으로 떠났다. 그 후 평양에 도착 후 납치범들을 내려놓고 하네바 공항으로 돌아왔다.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정부의 인력수출방법의 하나로 추진해온 광부 서독파견이 실현되어 그 제1진 123명이 63년 12월21일 떠났다. 이들은 서독에서 일하며 성실한 한국민의 이미지를 심어 국위를 떨쳤다. 이것을 처음으로 하여 광부들의 서독진출은 계속됐다.
박정희 대통령 초청으로 1966년 10월 31일에 방한한 「린든·B·존슨」 미국 대통령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35만 군중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시민환영대회에 참석했다 시청 앞 광장에 이른 「존슨」대통령 일행은 김 서울특별시장 내외의 영접을 받으며 평화대에 착석, 약 40만 시민이 베푸는 시민환영대회에서 박대통령의 환영사에 이어 방한 인사를 했다. 2박3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2일 박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이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담은 약3천자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2개항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한국의 경제, 사회 및 과학분야 발전을 위해 미국이 계속 지원할 것과 주한미군을 현재선 이하로 줄이지 않으며 한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을 때는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원조를 하겠다는 미국의 결의를 천명했다. 이번 방한을 통해 한미관계의 전통적인 우호를 재확인했다. 공식만찬메뉴판 (1966년) 밥, 전복탕, 신선로와 겨자채, 튀각과 김, 편육, 구절판, 불고기, 전유어였으며 디저트로 강정, 사과, 홍삼차등 한국의 전통 궁중요리가 준비됐다. 트럼프대통령 방한 당시 공식만찬메뉴(2017년) 옥수수죽을 올린 구황작물 소반 (옥수수죽은 어려운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부속초등학교는 1962년 10월 4일 설립인가를 받고 1963년 3월 9일 4학년 5학급을 편성 개교하였고 1979년 9월 세종국민학교로, 1996년 3월 세종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약칭, 국전이다. 제1회 국전은 1949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렸다. 심사위원장 고희동을 중심으로 선전 출신작가들이 많이 참여해 대통령상은 유경채, 국무총리상은 서세옥이 받아 서양화 출품작이 압도하는 현상을 보였다. 제2회 국전은 6·25전쟁이 끝난 1953년에 열렸으며, 1959년까지는 전쟁으로 인해 참여율이 적었고 서양화가 대부분의 상을 차지했다. 출품작의 성향은 1960년대까지 구상양식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1970년대에는 화단에서 비구상양식이 우세했으며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작가들이 늘어나 국제전에 출품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짐에 따라 국제전의 참여경력이 중시되고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편 원로작가들의 사망·은퇴 등으로 심사위원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국전폐지론이 조성되어 1980년 제30회를 끝으로 국전은 막을 내렸다.
강구면 오포리에 ‘조일산업’ 별표통조림 공장작업
70년대에 전국체육대회는 나라의 큰 해아였다. 국제 체육대회가 거의 없던 시절에 시·도 대항 전국체육대회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성대하게 치러졌다.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당시 일본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동포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는 2002년 11월 15일 지병인 폐렴으로 별세했다.
전국민 쥐잡기대회, 담배만들기 대회, 교통정리대회, 교련실기대회, 우량아 선발대회등 지금 들으면 이름도 생소한 별난 경기들이지만 이 속에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당시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은 컴퓨터의 보급으로 구시대 유물이 됐지만 타자경진대회도 60-70년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