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회장은 아시아·태평양여성단체연합(FAWA) 회장이기도 하다. 2014년 여성의 권한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직도 여성의 사회참여를 막고 있는 현실들을 보게 된다면 대답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후진국들도 여성의 정치, 경제 참여비율이 높다. 이는 역설적으로 주요 현안에 밀려 여성의 문제가 도외시돼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30년 이상‘여성 정치참여 확대’와‘여성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에 힘써온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 김정숙 회장을 만나 여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정치사회화 실천 김정숙 회장은 본래 평범하게 은행과 남편의 병원에서 일하던 여성이었다. 그러다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1988년 여당 후보로 출마하게 됐는데, 지역구의 주민들, 특히 남성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3명의 여성 후보자조차 용납하지 않은 이 사회로부터 여성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고, 이를 개선해 나가기 위
170개국 7백만 재외동포들의 벗, 재외동포재단 조규형 이사장 우리 민족 해외이주의 역사는 러시아 이주를 기점으로 올해 150년을 맞이하게 됐다. 그동안 170개국에 7백만 동포들이 살고 있는데, 이는 중국, 인도, 이스라엘에 견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인구수 대비로 보면 최고의 규모임을 자랑할 정도로 우리 동포사회가 크게 신장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그 뿐만 아니라 한민족 특유의 끈기와 인내, 그리고 교육열로 인해 우리 동포들은 거주국 내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고, 차세대들은 높은 교육열과 성실함으로 주류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버지니아 주의회의 동해 병기법안 통과와 수백 ㎞를 달려가 투표권을 행사한 미담까지 재외동포들의 활약상과 나라사랑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건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얼마 전 개최된 세계한인차세대대회를 통해 만난 재외동포재단 조규형 이사장에게서 재외동포 사회에 대해 알아봤다. 한민족 동포사회의 활약상 과거 우리 한민족은 폐쇄적이고 소심한 민족이라고 외부에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국제사회에 있어 우리 동포들은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알리
▲ "경륜은 지혜의 어머니", (사)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 임원들의 우국 표정 지난 2011년 4월 25일 창립한 사단법인 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 박흥서 상임대표를 만났다. 박흥서 상임대표는 1991년 건설교통부 동해지방 해난심판원장으로 정년을 마칠 때까지 37년 공직생활을 해오다 2005년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 상임대표는 전 재단법인 한국종합경제연구원장과, 사단법인 동북아관광학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국가의 심장인 농업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갈수록 어려워져 가는 농촌의 현실과 관련해, 박 대표는 농업이 안보의 근간이라는 생각으로 젊은농촌살리기운동을 시작하면서 지난 2007년부터 총 4,525명으로부터 서명을 받기도 했다. 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어떤 조직인가 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관계, 정계, 학계, 군, 언론계, 농업계 등 사회 각 분야 30년 이상의 경륜을 살려‘국가의 근간’은 국방과 농업이므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농업인력 확보와 농지보전이 미래의 국력신장과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다짐하여 창립한 조직이다. 젊은농촌살리기운동을 시작한 시기와 동기는 2007
▲ 이근후 이사장(오른쪽)과 김윤옥 기자(왼쪽) (사진= 장해순 기자)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 (사)가족아카데미아 이근후 이사장을 만났다. 재미있게 사는 것, 누구나가 바라는 일이지만 재미를 느끼는 대상이나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2013년 2월 출간 된 책이 1년 넘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있다. 50년을 교수로 정신과의사로 환자를 치료한 그를 만나 그만의 재미를 알고 싶었다.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하루의 모든 일상이 그에게는 재미다.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인 산증인이다. 관행을 바꾸는 생각이 들거나 실행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창의적인 발상 자체도 아무나 못하지만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용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이사장은 정신과 환자는 무조건 폐쇄병동에 입원시킬 때 일반병실을 병행했으며, 정신질환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다. 1980년대 엘빈 토플러의 책『제3의 물결』에서, 미래사회에는 대가족이 한지붕 아래 산다고 예측했는데 이 이사장이 현대판 대가족의 롤모델이 아닐까! 2남2녀의 자손과 함께 다섯 세대의 대가족이 한 울타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랑은
▲ 경기지방경찰청 최동해 청장 사법·행정 두루 거친 경륜과 지혜로 조직과 대민서비스 이끌어 매년 10월 21일은 경찰의 날이다. 21세기 경찰의 표상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경기청은‘범죄에는 강하고 도민에겐 든든한 경찰’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의 17배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을 관할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41개 경찰서 산하에 지구대 85, 파출소 233 합하여 318개 지파를 운영하고 있다. 24시간 지역민의 치안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의 최고 수장 최동해 청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경기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치안수요 지역 서울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되는 경기도 지역의 특성상 경기 북부지역은 휴전선을 관할하는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치안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경기북부청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신도시 개발 등으로 각종 치안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치안수요가 전국의 약 1/4 가량을 차지하는 반면, 경찰 인력은 18.3%에 불과하며, 경찰관 1인당 담당 인구도 628명으로 전국 평균인 479명을 크게 웃도는 등 치안 여건이 여타 지역에 비해 어려운
(사)한국국악협회 홍성덕 이사장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도 단체도 가정도 미래와 역사가 바뀐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릿고개를 넘기고 경제를 일으켜 선진국으로 가는 초석을 다졌다. 딸은 대한민국 최초 여자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핏줄로 이어진 가문의 뿌리와 정신은 무엇보다 나라 사랑이 먼저였다. 한국국악협회 홍성덕 이사장은 세계적으로 독특한 공연예술 여성국극을 국악의 한 분야로 새롭게 정립한 장본인이다. 부모를 비롯하여 자식과 손녀까지 집안의 4대가 국악인이다. 국악협회 이사장 취임 후 열과 성을 다하여 협회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홍 이사장을 만나 국악의 가르침과 정신, 뿌리, 혼, 애환 등 이야기를 나눴다. 3전4기 끝에 국악협회 이사장에 취임 홍성덕 이사장은 2012년 2월 (사)한국국악협회 제25대 이사장으로 선거에서 당당하게 선출되어 2백만 국악인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이사장 후보 선거에서 3번 떨어지고 재도전하여 4번째 이뤄낸 쾌거였다. 당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을 뭐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라며“아들의 바람대로 국악협회를 위해서 그리고 국악
▲ 광화문 거리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 동상 설립 5주년. 광화문 광장의 상징으로 자리 잡다. “백성을 향한 온화한 미소를 표현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동상의 얼굴을 만드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습니다.뻗은 손이 안으로 향한 것은 백성을 감싸 안기에 가장 적합한 동작이라고 생각한 까닭입니다.”5년 전 한글날 광화문에는 한 동상이 세워져야 했다. 제작기간이 짧았고 국민이 사랑하는 위인을 동상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건강을 망칠 정도로 신경을 썼던 조각가 김영원. 그토록 신경을 썼건만 동상 제작 후에 누군가는 최상의 비율로 주조한 청동에서만 발하는 황금빛을 트집 잡기도 했고, 광화문 앞 큼직한 빌딩 옆에 자리한 세종대왕 동상이 조금이라도 초라해 보일까 고심하여 정한 동상의 크기가 너무 큰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었다.그러나 지금은 유치원생도, 서울에 놀러 온 지방 사람도,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까지 모두가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있음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는다. 세종대왕의 사랑에 감싸 안기듯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깨달음을 인체 조각으로 표현하다. 조각가 김영원은 세종대왕 동상뿐만 아니라 박
죽암그룹의 창업자 우석 김세기 선생(1920년~2003년)은 고흥에 있을 때면 거의 집에서 저녁을 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숨 자고 밤 11시~12시면 일어나 맑은 정신에 붓을 들고 새벽 4시까지 공부를 했다. 다시 한숨 자고 아침 식사 후면 자전거를 타고 간척지를 돌았다. 얼마나 자전거를 많이 탔던지 1년이면 자전거 2~3대가 다 닳아 새로 사야 했다. 말씀대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했다. 그날도 농지를 돌아보다 자전거와 같이 넘어진 것이 이 세상과 이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석 김세기 기념관에 있는 자전거를 보자 그 분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 크락션을 누르니 빠앙~하는 소리가 그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 김세기 선생의 끈기와 땀으로 이루어진 200만평 간척지의 전경과 고흥주민이 세워준 공덕비 죽암농장에 있는 김세기 기념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머님 돌아가신 1주기를 앞두고 쓴 글이다.‘성리학 대학자의 따님이자, 선비인 남편의 아내로 갑자기 곤궁해진 살림을 맡아, 낮이면 남의 밭을 메고 밤이면 바느질품을 판 어머님의 수고로 우리 가족은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봄이 되면 쑥 뜯어 된장 무쳐 먹고 물을 마
‘니 돈 벌어서 뭐 할끼고’선친께서 사업에 열심인 죽암그룹의 장남 김종욱 회장에게 던진 말씀이다. 선친은 경상도 산청에서 태어나 전라도 고흥의 200만평 간척지를 개간한 우석 김세기 선생이다. 죽암간척지는 현대 정주영 회장 서산간척지의 롤모델이었다. 김 회장은 1964년 중학교 때부터, 삽 한자루 들고 이상을 실현하는 아버지 최측근에서 죽암의 역사를 같이 써왔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 농촌개혁운동을 하던 선친은 일본도 못하고, 내노라 하는 유지도 실패하여 물러난 간척지를 한 개인이 주도하여 비옥한 농토로 만들었다. 태풍도 선친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편갈라 놓은 영호남의 장벽을 넘어 같이 화합하며 간척지를 개간한 것이다. 그 DNA가 그대로 대물림 되어 죽암그룹은 번성하고 있다. 고흥 특집편을 기획하며 관계기관에 제일 추천할 만한 기업이 어떤 곳인지 물었다. 많은 분들이 죽암그룹을 추천했다. 이유는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는 물론 선친을 기리는 장학회를 만들어 사회공헌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지 사람이 고흥에 와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데, 심지어 지역민들은 김 회장의 선친
[인터넷 대한뉴스] 글 편집국 우리 말 중에‘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젊은 시절을 치열하고 바쁘게 생활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야 인생의 밑거름이 된다는 말인데, 간혹 어떤 사람에게는 이 고생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혹독한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주)서부기업의 정건희 대표이사에게도 젊은 시절의 고생이 그렇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정 대표는 고객과 (주)서부기업이라는 기업이미지를 위해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발 벗고 뛰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주)서부기업을 찾아 기업을 경영하는 원칙에 대해 들어보았다. 주택건축 변화의 흐름 예측 정건희 대표는 회사를 설립하기 전 일찍 조실부모하고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평범한 전기회사에 취직했다. 그 회사에서 생전 해보지도 않은 공사를 하면서 회사를 위해 온갖 고생을 했지만,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정해진 월급뿐 따뜻한 말 한 마디 돌아오지 않았다.‘이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차라리 내가 나를 위해 살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