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한국방위산업학회 정기총회와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1991년 학술적 조사연구와 정보교류를 통해 국방 및 방위 산업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본 학회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 백영훈 원장이 초대 회장이다. 방위산업은 1974년 율곡사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총알도 만들지 못했던 대한민국이 2014년에는 방산수출 36억 달러를 돌파했다. 2년간의 집필기간을 거쳐 발간된 본서에는 방위산업 40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날 축사에서 황진하 국방위원장은 방위산업에 종사하는 회원들에게 고마움과 노고를 치하하며 세 가지를 언급했다.‘첫째, 여러분이 만든 제품이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여태까지 해왔듯이 보다 더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정신으로 우수한 제품생산을 해야 한다. 셋째, 경쟁력은 도덕성과 투명성에서 나온다. 유사시 적과 싸우는 현장에서야 빛을 발하는 방산제품이기에 우리의 아들 딸에게 큰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더불어 국방위원장으로서 여러분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방위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현실적 지원 추진을
▲ 제품 검토를 하고 있는 미래데코 김천웅 사장(오른쪽)과 개발부 김은정 실장, 인터넷사업부 박도영 팀장 우아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의 창가 장식으로 여전히 커튼이 대세다.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트리밍이 더해지면 그 분위기는 한층 더해진다. 미래데코는 26년 간 200여 종의 디자인을 출시하여 트리밍업계 최초로 105건의 특허 출원 및 등록을 했다. 수십 년간 커튼, 침장, 가구 및 인테리어 부자재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해 온 경험을 살려 혁신적인 신상품을 출시했다. 시대에 맞게 판매방식도 소비자를 우선시했다. 봄을 맞아 적은 비용으로 실내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어 찾아갔다. 버티컬이나 블라인드 등 다양한 제품이 사무실뿐만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도 창문 장식용으로 많이 쓰이지만 요즘은 커튼을 다는 분위기다. 기능과 건강 그리고 장식면에서 커튼을 다시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 세탁의 불편함과 무게감을 줄이고 인테리어 효과는 훨씬 높인 다양한 색감과 재질로 실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커튼, 신기술로 가격은 내리고 생활은 편리하게 만든 미래데코의 신제품을 만나본다. S라인 형상기억커튼 계절이 바뀔 때면 실내 대청소에 커튼은 필수 항목이
▲ 정갑윤 국회부의장(사진=장해순 기자) “경제는 경제인이 살릴 수 있다. 가석방 요건이 되는 기업인은 과감하게 석방하자”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국회의원들 간에 신망이 두터운 반면 쓴소리도 잘한다. 경제 살리는 주역인 기업인들을 법에 따라 석방하자고 한다. 정부에서 기업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고 누구보다 법을 지켜야 할 기업인들이기에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석방 자격이 되는 사람은 풀어주어 전력을 다해 경제살리기에 주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16·17대 국회의원, 18대에서는 예산결산위원장, 19대에서는 국회부의장을 맡아 울산 지역민들의 숙원인 울산과학기술원을 탄생시켰으며 변변한 공장 하나 없던 중구 장현동에 국가지정 산업단지인 도시첨단산업단지를 들어서게 했다. 정 부의장은 대한민국 중공업발전의 요람이었던 울산을 미래 먹거리 창출도시로 변환하는 구심점에 있는 것이다. 정 부의장은 말한다.“창조경제니 선진경제니 말들은 많이 하는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국회부의장이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인 정갑윤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발의했다.&
▲ 두 손을 꼭 잡은 전 KAIST 정문술 이사장(오른쪽)과 이광형 원장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는 국가 정책 이제는 21세기 선비의 힘으로 지속가능하게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이광형 원장은 미래전략 외에 지식재산과정, 과학저널리즘 3개 과정을 주도해서 만들었다. 대학이 교육·연구만이 아니라 창업까지 해야 한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이 넥슨·아이디스·네오위즈를 창업했다. 이 원장은 1999년 인기리에 방영된 TV‘카이스트’드라마 괴짜 교수(안정훈 역)의 실제 모델이다. 자신을 위해 충실했던 학자가 이제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뛰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의 정책이 수없이 바뀌어 온 폐단을 없애기 위해 이제 그가 발 벗고 나섰다. 그의 진가를 아는 정문술 전 KAIST 이사장은 515억 원을 KAIST에 기부했다. 여간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정 이사장이지만 이광형 원장에게는 예외다. 작년 12월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는‘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5’책을 발간했다. 이 책을 주제로 6개월 간 매주 주제별 토론회를 개최하여 토론회 결과물을&
▲ 축하케이크 커팅을 하는 (왼쪽부터) 일본 호시 사토시 회장과 대만 모국휘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림 회장, 이영호 총재, 이정락 준비위원장.(사진=장해순 기자) 청아한 산, 맑은 물, 자연따라 사람마음도 깨끗해지려 노력하는 삼청(三淸)로타리클럽 매주 수요일 오전 7시 조선호텔에서 조찬 모임을 해온 지 20년이다. 옛 조상들이 하늘을 우러러 제사를 올리던 원구단(제단)을 창밖으로 보며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로타리송을 노래하며 초아의 봉사(service above self)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다짐을 다 같이 소리 높여 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첫째, 진실한가? 둘째, 모두에게 공평한가? 셋째,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넷째, 모두에게 유익한가? 회원들은 겨울이면 컴컴할 때 집에서 나와 조선호텔에서 인사를 나누며 날이 밝는 것을 볼 수 있다. 20년간 한 장소에서 매주 만나오고 있다. 형제자매보다도 자주 만나니 누군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다. 20년 간 조간 주회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신 511명의 외부인사와 107명의 회원을 초청하여 그들로부터 갖가지 인생의 경험 철학을 들
▲ 로타리 최초 4인, 왼쪽부터 2번째 창시자 폴 해리스 전 세계에서 소아마비를 박멸시킨 국제로타리 로타리가 가는 곳엔 굶주린 이들이 밥을 먹고, 집 없는 이들이 지낼 곳을 찾고, 병든 이들이 옷을 입을 수 있고, 아동은 예방접종을 받으며, 문맹이었던 사람들이 읽고 쓰며, 계산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얻고, 수많은 사람들이 식수, 조리, 목욕, 세탁에 쓸 수 있는 깨끗한 물이 공급된다. 사람들을 연결하며. 봉사 6대 초점분야를 실천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일으켜 삶을 변화시킨다. 1905년 미국에서 4명이 모여 시작한 이 단체가 지금은 전 세계 200여 개국에 회원이 120여 만명이다. 문제해결로 봉사하며 기부금의 90%가 직접 봉사목적을 위해 쓰여 진다. 우리나라에는 6여 만명의 회원이 있으며 재단기여도와 회원 수가 전 세계에서 4위다. 한국어가 공용어로 인정받았다. 국제로타리 ▲ 2014년 호주 시드니 세계대회에서 연설하는 이동건 로타리재단 관리위원회위원장 (우리나라 최초 세계로타리회장 2008~2009년 역임) 청년변호사 폴 해리스(Paul P. Harris)는
대한늬우스를 보며 꿈을 키운 백영훈 원장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도움을 받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 백영훈 원장에게 12월은 아주 의미가 많은 달이다. 1961년 12월 11일은 정래혁 장관과 함께 차관 도입을 위해 서독을 방문했다. 1963년 12월 22일은 파독 광부 1진 123명이 독일에 파견된 날이다. 1964년 12월 5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중앙대 교수였던 백 원장은 서독 방문 때마다 통역관으로 대동했다. 파독 광부·간호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을 이루었다. 그 일이 성사되기까지 백방으로 뛴 사람이 백 원장이다. 1961년부터 현재까지 백 원장은 경제발전의 현역으로 있다. 백 원장의 기억에 의존한 이야기를 듣고 쓰는 일화다. 글 김윤옥 ▲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제9대, 제10대 국회의원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 대한늬우스 “대한늬우스를 보며 이승만 대통령의 국비장학유학생 모집 사실을 알았고 지원하게 됐지. 16대 1인데 내가 뽑혀 서독 유학을 가게 된 거야. 영화보다는 뉴스
관행을 유쾌·통쾌하게 깨는 코미디극장 전유성 대표 ▲ 엄청 컸던 도자기 깨지는 소리 8년 전 경북 청도로 내려갔다. 여러 지자체에서 제의가 있었지만 새로운 성전을 지어 이사하는 허름한 낡은 교회가 눈에 띄어 청도로 갔다. 중국집 철가방 모양의 건물을 지어 코미디극장을 세웠다. 40석 규모의 소극장으로 몇 개월 전 예약해야 공연을 볼 수 있다. 개그맨 시험에 3번 떨어진 사람은 무조건 받아주어 공부시키며 무대에 올려준다. 현재 유명 개그맨 중에 코미디극장 출신이 20여 명이다. 다양한 공연 중 2009년부터 시작한‘개나소나 콘서트’는 전국의 애완견과 반려인(人)들이 공연을 보러온다. 엄마 뱃속에서 음악을 듣던 아기들이 태어나면 7세까지는 공연장에 갈 수 없는 엄숙한 음악회를, 요절복통 웃음이 있는 클래식 음악회로 만들어 어린아이를 포함한 3세대가 같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청도군에서는 전유성의 코미디극장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며 한국코미디 창작촌을 기획하고 있다. 가을정취가 완연한 청명한 날 그의 서울 나들이를 살펴봤다. 글 김윤옥 오전 7시 삼청로타리 강연 11월 5일 조선호텔 아침 7
▲ 이근후 이사장(오른쪽)과 김윤옥 기자(왼쪽) (사진= 장해순 기자)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 (사)가족아카데미아 이근후 이사장을 만났다. 재미있게 사는 것, 누구나가 바라는 일이지만 재미를 느끼는 대상이나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2013년 2월 출간 된 책이 1년 넘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있다. 50년을 교수로 정신과의사로 환자를 치료한 그를 만나 그만의 재미를 알고 싶었다.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하루의 모든 일상이 그에게는 재미다.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인 산증인이다. 관행을 바꾸는 생각이 들거나 실행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창의적인 발상 자체도 아무나 못하지만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용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이사장은 정신과 환자는 무조건 폐쇄병동에 입원시킬 때 일반병실을 병행했으며, 정신질환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다. 1980년대 엘빈 토플러의 책『제3의 물결』에서, 미래사회에는 대가족이 한지붕 아래 산다고 예측했는데 이 이사장이 현대판 대가족의 롤모델이 아닐까! 2남2녀의 자손과 함께 다섯 세대의 대가족이 한 울타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랑은
요즘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할지 검인정으로 할지의 논란이 많다. 다수의 사람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서로 다른 시각을 잘 조율하여 후대에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려 하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근대사의 인물을 중점으로 그와 직접 접한 사람이나 동시대인들의 증언을 통해 여러 자료들을 발굴하여 기사화하고자 한다. 한국문학의 대표적 인물인 춘원 이광수는 일제말기 민족사의 비극인 친일행적이 문제되어 모든 그의 문학적 업적마저도 사장되어 잊혀가고 있다. 그에 대해 뜻이 있는 지식인들이 춘원연구학회를 설립하고 포럼 및 연구를 통해 춘원에 대해 바로 알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6월호에 춘원 이광수를 게재하며 그에 대한 행적을 더 발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물전기학회 회장이며 춘원연구학회 회원으로 이광수의 소설‘유정’의 배경이 된 소련의 바이칼호 일대를 다녀온 최종고 교수를 만났다. 글 김윤옥 ▲ 최종고 교수와 대담을 나누는 본지 김윤옥 기자 최종고 교수 1947년 경북 상주출생으로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한복의 형태와 구조는 수많은 시간을 거쳐 오면서 당시의 산업구조와 생활문화, 미의식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지금은 풍성한 곡선의 실루엣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시대 후기의 양식을 우리의 전통한복이라고 한다. 우리 옷의 기본형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바지저고리와 포(袍)를 기본으로 한 채 저고리의 길이, 옷고름의 길이와 넓이, 소매 배래선의 곡선 등 부분적인 변화를 거쳐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완성하여 왔다. 한복을 입었을 때 조심해야 할 것과 인사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우리 옷으로 멋내기>에서 발췌 ▲ 제2회 한복대회에서 아버지에게 절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우리 옷의 아름다움 우리는 우리 옷 한복을 입으면 언행에 예의를 갖추게 된다. 예의범절을 바탕으로 지극히 절제된 행동과 언어에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있고, 그 위엄 뒤에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긴장감은 삶의 품위와 깊이를 더해준다. 이처럼 우리 옷 한복은 옷의 아름다움과 지극히 절제된 언행의 조화 속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그것은 우리의 전통복식 문화가 바로 예의를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덕호 도밍고와 이인화 카타리나 작가는 흔히들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김덕호와 이인화 작가는 작품에서는 물론 실생활인 결혼식에서 작가로서의 세계를 표현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만나 5년간의 열애 끝에, 예술가인 두 사람이 만나 새 출발을 하는 성스러운 자리를 그들만의 색깔로 그려냈다. 글 김윤옥 ▲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결혼식의 주인공인 맑은 영혼의 두 예술가, 신부 이인화와 신랑 김덕호 2014년 8월 30일 오전 11시 천주교 수원교구 오전동 성당, 흰 블라우스에 회색바지 검은색 단화차림의 평상복에 들꽃을 그저 묶어 아무런 장식 없이 부케로 소박하게 들고 있는 사람이 신부였다. 신랑은 신부와 같은 흰색 난방에 검은색 바지차림, 성당 앞자리 몇 줄만 사람이 앉아 있고 나머지 자리에는 천사들이 앉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당당함과 행복에 겨운 얼굴의 신부와 그녀를 맞이하는 신랑의 모습은 일반적인 결혼문화에 젖어 있는 기자의 눈에는 충격이자 그들의 신선함이 신성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신랑과 신부는 만족하며 그들만의 예식을 즐기는 동안 도리어 혼배성사 겸
중국 황산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복합유산으로 전 세계에서 29곳 밖에 없는 곳 중 하나다. 복합유산이라 함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의 특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으로 자연천혜의 환경에 인류의 문명이 더해진 곳을 말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각 지자체에서는 그 지역의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 하고 환경단체에서는 반대하고 있다. 산을 멀리서 바라만 볼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문명의 힘을 더해 많은 이들이 산의 정기를 향유하게 할 것인가. 황산의 어떤 점이 1990년 자연유산으로 지정받은 데 이어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 다녀왔다. 글·사진 김윤옥 중국의 황산은 전생에 덕이 있어야 오를 수 있고 3대가 덕을 쌓았을 때 맑은 날씨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좋은 날씨를 보기 어렵다는 것인데 황산은 1년이면 약 200일은 비가 내린다는 습한 안후이성에 있다. 1억년 전에 중생대의 지각 운동과 잇따른 융기작용을 거치면서 수많은 봉우리가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지형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약 3배 규모로 해발 1860m의 연화봉을 중심으로 광명정, 천도봉 등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14,000여 개의 봉우리
죽암그룹의 창업자 우석 김세기 선생(1920년~2003년)은 고흥에 있을 때면 거의 집에서 저녁을 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숨 자고 밤 11시~12시면 일어나 맑은 정신에 붓을 들고 새벽 4시까지 공부를 했다. 다시 한숨 자고 아침 식사 후면 자전거를 타고 간척지를 돌았다. 얼마나 자전거를 많이 탔던지 1년이면 자전거 2~3대가 다 닳아 새로 사야 했다. 말씀대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했다. 그날도 농지를 돌아보다 자전거와 같이 넘어진 것이 이 세상과 이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석 김세기 기념관에 있는 자전거를 보자 그 분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 크락션을 누르니 빠앙~하는 소리가 그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 김세기 선생의 끈기와 땀으로 이루어진 200만평 간척지의 전경과 고흥주민이 세워준 공덕비 죽암농장에 있는 김세기 기념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머님 돌아가신 1주기를 앞두고 쓴 글이다.‘성리학 대학자의 따님이자, 선비인 남편의 아내로 갑자기 곤궁해진 살림을 맡아, 낮이면 남의 밭을 메고 밤이면 바느질품을 판 어머님의 수고로 우리 가족은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봄이 되면 쑥 뜯어 된장 무쳐 먹고 물을 마
‘니 돈 벌어서 뭐 할끼고’선친께서 사업에 열심인 죽암그룹의 장남 김종욱 회장에게 던진 말씀이다. 선친은 경상도 산청에서 태어나 전라도 고흥의 200만평 간척지를 개간한 우석 김세기 선생이다. 죽암간척지는 현대 정주영 회장 서산간척지의 롤모델이었다. 김 회장은 1964년 중학교 때부터, 삽 한자루 들고 이상을 실현하는 아버지 최측근에서 죽암의 역사를 같이 써왔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 농촌개혁운동을 하던 선친은 일본도 못하고, 내노라 하는 유지도 실패하여 물러난 간척지를 한 개인이 주도하여 비옥한 농토로 만들었다. 태풍도 선친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편갈라 놓은 영호남의 장벽을 넘어 같이 화합하며 간척지를 개간한 것이다. 그 DNA가 그대로 대물림 되어 죽암그룹은 번성하고 있다. 고흥 특집편을 기획하며 관계기관에 제일 추천할 만한 기업이 어떤 곳인지 물었다. 많은 분들이 죽암그룹을 추천했다. 이유는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는 물론 선친을 기리는 장학회를 만들어 사회공헌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지 사람이 고흥에 와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데, 심지어 지역민들은 김 회장의 선친